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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oho Yi 2020-06-08 17:39:5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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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였나, 아파트에서 살던 나는 집에 혼자 있다가 부모님에 대한 분노에 크게 사로잡힌 적이 있다. 아니, 그게, 시작부터 화를 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지금 기억하고 있는 사건은 이런 것이다. 나는 뭔가 초조하거나, 기분이 상한 부분이 있었는데, 부모랑 있었던 어떤 사건에 대해서, 그것을 되새겨 가면서 혼자, 생각에 잠겨 있는 중이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안방에 6칸 짜리 목재 서랍장을 한 서랍씩 열어재꼈다가 다시 밀어넣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바퀴가 달린 고급서랍장은 스르르- 미끄러지면서 열리고, 마지막까지 열리면, 멈춤 턱에 걸리면서, 탁-하고 멈추고, 마찬가지로 밀어 넣을때도 부드럽게 미끄러져 들어가서 큼-하고 닫히는 그런 서랍장이었다. 나는 도저히 용서하지 못할 그 어떤 사건을 떠올리면서, '그 불합리한 사건', 하고 서랍을 열고, '그 부당한 언사', 하고 서랍을 닫고, '그 부당한 체벌', 하고 서랍을 열고, '그 부당한 표정!', 하고 서랍을 닫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생각하면 할 수록, 화가 치솟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서랍에 가하는 힘을 주체할 수 없게 되고, 마침내는 서랍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고리가 달린 앞부분이 뜯어져 부서져서 버리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중학생 때였나, 아파트에서 살던 나는 집에 혼자 있다가 부모님에 대한 분노에 크게 사로잡힌 적이 있다. 아니, 그게, 시작부터 화를 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지금 기억하고 있는 사건은 이런 것이다. 나는 뭔가 초조하거나, 기분이 상한 부분이 있었는데, 부모랑 있었던 어떤 사건에 대해서, 그것을 되새겨 가면서 혼자, 생각에 잠겨 있는 중이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안방에 6칸 짜리 목재 서랍장을 한 서랍씩 열어재꼈다가 다시 밀어넣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바퀴가 달린 고급서랍장은 스르르- 미끄러지면서 열리고, 마지막까지 열리면, 멈춤 턱에 걸리면서, 탁-하고 멈추고, 마찬가지로 밀어 넣을때도 부드럽게 미끄러져 들어가서 큼-하고 닫히는 그런 서랍장이었다. 나는 도저히 용서하지 못할 그 어떤 사건을 떠올리면서, '그 불합리한 사건', 하고 서랍을 열고, '그 부당한 언사', 하고 서랍을 닫고, '그 부당한 체벌', 하고 서랍을 열고, '그 부당한 표정!', 하고 서랍을 닫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생각하면 할 수록, 화가 치솟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서랍에 가하는 힘을 주체할 수 없게 되고, 마침내는 서랍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고리가 달린 앞부분이 뜯어져 부서져서 버리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고급서랍장이라고 해봤자, 겉보기만 그런 것이지, 결국은 타카심으로 대충 조립된 서랍이어서 충격을 받자 타카심들이 숭숭 전부다 빠져버린 것이다.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지만, 오히려 극단적으로 냉정해진 나는 즉시 신발장에서 망치를 가져다가, 빠진 타카심들의 위치를 살살 맞춰가며 조심스럽게 다시 박아 넣으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콩-콩-콩. 하지만, 그렇게 쉽게 고쳐질 일이 아니다. 아-씨. 짜증이 난다. 이것은 내가 알기로는 엄마 아빠의 혼수로 구입한 장롱과 서랍장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짜증이 더 난다.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지? 하는 생각이 울컥하고 밀려온다. 망치를 두드리는 힘을 또 조절을 못하게 된다. 울화통이 터진다. 왜 안되니, 왜! 하면서, 서랍을 패기 시작했고, 손이 얼얼해져서 망치를 떨어뜨리고, 바닥에 주저 앉았을때는, 그 서랍은 망치질로 흉칙하게 패어 있었다. 고급서랍장이라고 해봤자, 겉보기만 그런 것이지, 결국은 타카심으로 대충 조립된 서랍이어서 충격을 받자 타카심들이 숭숭 전부다 빠져버린 것이다.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지만, 오히려 극단적으로 냉정해진 나는 즉시 신발장에서 망치를 가져다가, 빠진 타카심들의 위치를 살살 맞춰가며 조심스럽게 다시 박아 넣으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콩콩콩-. 하지만, 그렇게 쉽게 고쳐질 일이 아니다. 아-씨. 짜증이 난다. 이것은 내가 알기로는 엄마 아빠의 혼수로 구입한 장롱과 서랍장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짜증이 더 난다.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지? 하는 생각이 울컥하고 밀려온다. 망치를 두드리는 힘을 또 조절을 못하게 된다. 울화통이 터진다. 왜 안되니, 왜! 하면서, 서랍을 패기 시작했고, 손이 얼얼해져서 망치를 떨어뜨리고, 바닥에 주저 앉았을때는, 그 서랍은 망치질로 흉칙하게 패어 있었다.
* *
지금도 그 서랍장은 부모님 댁에 있다. 부모님은 그 서랍장이 왜 그렇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 단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당시에 나는 이제 크게 혼이 나겠구나, 각오를 하고 있었다. 이런 일을 저지른 나에 대해서 이제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기왕 이렇게 됐으니, 지금까지 말 못한 억울한 것들에 대해서 말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해야겠다고 두려움을 억눌러가며 다짐했다. 그런데, 정작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없던 셈 취급을 당하니, 그건 더욱더 속상했다. 못 볼수가 없고, 모를 수가 없는 일인데, 왜 적어도 '너가 그랬나?' '왜 그랬나?' '어쩌다 그랬나?' '뭐가 그렇게 화가 났나?' 이런 이야기 걸어오지 않는 걸까? 난 또 지금 이렇게 묵살 당한 것인가? 지금도 그 서랍장은 부모님 댁에 있다. 부모님은 그 서랍장이 왜 그렇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 단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당시에 나는 이제 크게 혼이 나겠구나, 각오를 하고 있었다. 이런 일을 저지른 나에 대해서 이제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기왕 이렇게 됐으니, 지금까지 말 못한 억울한 것들에 대해서 말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해야겠다고 두려움을 억눌러가며 다짐했다. 그런데, 정작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없던 셈 취급을 당하니, 그건 더욱 더 속상했다. 왜 적어도 '너가 그랬나?' '왜 그랬나?' '어쩌다 그랬나?' '뭐가 그렇게 화가 났나?' 이런 이야기 걸어오지 않는 걸까? 그 이후, 며칠동안 망치질 자국으로 뒤덥힌 서랍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나는 결심하게 된다. 나도 그것에 대해서 다시는 말하지 않겠다고. 우리 사이의 골은 그렇게 한번 더 깊어졌다.
나는 결심하게 된다. 나도 그것에 대해서 다시는 말하지 않겠다로 결심한다. 우리 사이의 골은 그렇게 한번 더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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