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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22, 17:03:08, +0900>`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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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에 사는 고양이의 이름은 '소리'라고 한다. 하지만, '소리야' 하고 부르는 일은 평생 거의 없었고, 언제나 '소리-짱' 이라고, 짱즈케를 한다. 이름을 갓 지은때는, '소리-이!', '소리-야!' 하고 불러보기도 했었는데, 자꾸 첫음절에 강세가 붙어서, '소리'가 '쏘리'가 되는 현상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 '쏘리~!' 이렇게 되는데, 영어로 '미안해, 유감이다'라는 의미가 된다. 마치, '유감스러운 존재'라는 의미가 되는 것 같아서 그렇게 부르는 것을 기피하게 된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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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에 사는 고양이의 이름은 '소리'라고 한다. 하지만, '소리야' 하고 부르는 일은 평생 거의 없었고, 언제나 '소리-짱' 이라고, 짱즈케를 한다. 이름을 갓 지은때는, '소리-이!', '소리-야!' 하고 불러보기도 했었는데, 자꾸 첫음절에 강세가 붙어서, '소리'가 '쏘리'가 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면, '쏘리~!' 이렇게 되는데, 영어로 '미안해, 유감이다'라는 의미가 된다. 기피하게 된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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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이름 잘못지었어. 이름 바꿔야겠어.'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동물병원에도 그렇게 등록되었고, 주변 사람들도 다들 그렇게 알고 있어서, 사태가 커져버렸던 터였고, 막상 다른 이름을 생각해도 '소리'라는 이름으로 돌아와버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실, 그런 의미론적인 생각들은 우리들의 머리속에서만 일어나는 것이지, 소리짱은 그다지 상관하는 것 같지 않았던 것도 한 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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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이름 잘못지었어. 이름 바꿔야겠어.'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동물병원에도 그렇게 등록되었고, 주변 사람들도 다들 그렇게 알고 있어서, 사태가 커져버렸던 터였고, 막상 다른 이름을 생각해도 '소리'라는 이름으로 돌아와버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실, 그런 의미론적인 생각들은 우리들의 머리속에서만 일어나는 것이지, 소리짱은 그다지 상관하는 것 같지 않았던 것도 한 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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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7 +79,9 @@ 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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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회복되면서, 서서히 우리들도 소리짱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무언가를 시도해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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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회복되면서, 서서히 우리들도 소리짱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무언가를 시도해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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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놀아주기. 소리로 놀아주기. 소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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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짱은 귀신처럼 우리의 위치와 몸짓을 파악한다. 눈이 안보이지만, 눈이 있는 것 처럼 고개를 움직인다. 내가 다가가면, 내 얼굴을 본다. 어떻게 아는 걸까? 예를들면, 좀 거리가 떨어진 탁자에서 앉아서 작업을 하고 있다가도, 고개를 돌려서, 소리짱을 바라보면, 소리짱도 그것을 알아채고 나를 마주 본다. '에? 나 지금 소리 안냈는데? 어떻게 알지?' 귀신 같은 소리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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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엄청나게 좋다고 하는 고양이는, 원래부터 시각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의사선생님이 말했었다. 시각은 보조적이고, 주 감각은 청각과 후각이라고 들었다. 후각은 물론 좋을테지만, 소리짱의 반응은 그야말로,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소리짱의 반응과 나의 행동을 집요하게 관찰해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름의 가설을 세웠다. '관절' 소리와 '숨'소리를 듣는 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내가 소리짱에게 손을 내밀었다고 하자. 고양이 인사를 하려고, 조금 떨어진 거리에 쭈그려 앉았은 상태에서 손을 내미는 동작을 했다고 하면, 소리짱은 손 끝을 바라본다. 그 때 내가 검지 손가락을 살며시, 구부린다면, 검지손가락을 주목한다. 어떻게 가능할까? 검지손가락을 구부리는 소리가 나는 것 아닐까? 관절 연골의 마찰음 같은 것이. 마찬가지로 숨소리가 나의 코에서 숨소리가 나는데, 이것은 마치 스피커와 같아서, 얼굴면에서 반사되어서 내가 바라보는 쪽으로 지향성을 갖는 소리가 아닐까. 그렇다면, 이 스피커를-즉, 얼굴을 소리짱에게 향하게 되면, 소리의 에너지가 높아져서, 주목받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소리가 아무리 작아도, 그것이 직접적으로 전해져 오는지, 반사되어서 돌아오는지는 큰 차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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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짱의 앞에서 화려하게 움직이다가, 어느 순간 몸의 모든 기관을 멈춰보았다. 이때, 반드시 숨도 참아야 한다. 가능하면, 심장도 조용히 뛰게 해야 한다. 관절하나도 움직이지 말것. 그러면, 소리짱이 흥미를 보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라진 존재. 분명히 있었는데, 없는 것 같네? 어디갔지? 하고 가까이 온다. 이때, 내 손의 마지막 위치에 대한 기억이 헷갈리고, 손의 위치를 예측하지 못해, 살짝 닿거나 한다. '아니, 냄새로 알아야 하는 거 아냐?' 라고 생각하지만, '으, 더이상 숨 참을 수가 없다.' 우리는, 이런식으로 소리 투명인간 놀이를 하고 노는 것을 한동안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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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짱에게 존재는 어떻게 생겼으면, 어떻게 들려올까. 나의 손과 나의 목관절과 나의 발자국 소리가 한 사람의 것이라는 걸, 한 존재에서 유래하고 있는 것이라는 걸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까마귀 날자 배떨어진다.' 가 아니라, 까마귀와 배가 세포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덩어리라는 걸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시각은 소리없는 연결을 파악할 수 있다. 청각으로는 연결된 몸을 파악할 수 없는 게 아닐까? 그러면, 소리짱에게 내가 걸어오는 모양은 시끄러운 양철 로봇트 처럼 팔다리목가슴발이 치렁치렁 거리는 소리나는 여러 군집이 무섭게 다가오는 것과 같이 보이는 건 아닐까? 어째서인지 저 소리들은 함께 움직이긴 하는데, 왜 손을 물면, 위에있는 항상 떠드는 입이 어딘가 아픈 듯이 소리를 낼까. 오늘 나에게 맛있는 참치캔을 준 손이 고맙긴한데, 버릇없이, '맛있냐? 고맙지?'라고 말하는 저 입은 항상 떠들기만 하는 데, 나한테 뭐가 고마워할 일을 했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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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짱의 청각 테스트는 언제나 재미있다. 모든 고양이들 놀이의 기본은 움직이다가 멈추는 것이고, 사물이 보이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인간 어린이 두 살도 같은 식으로 놀아주면 된다. 숨겼다가, 보여주기. 소리짱의 경우에는 소리로 숨겨야 한다. 소리를 내다가 안내면 된다. 소리짱이 좋아하는 장난감은 그래서, 소리가 작은 장난감이다. 방울 이런거 달린것도 좋아하지만, 어느정도 하고 나면, 그런 것들은 금방 싫증이 난다. 소리가 너무 잘 들려서, 재미가 없는 것 같다. 그냥 막대기 끝네 작은 털뭉치가 달린 장난감이 있는데, 원래는 물고 빠는 장난감이지만, 이걸로 장판 바닥을 긁어주면, 사-악 사-악 하는 작은 소리가 난다. 여기까지는 사람귀에 들리지만, 그런 다음에 그냥 제자리에서 천천히 회전을 시킨다. 그러면, 우리는 듣지 못하는 더 작은 사-악 소리가 나겠지. 소리짱은 이 소리를 아주 흥미롭게 듣는다. 분명히 소리가 작다는 것은 소리짱에게는 존재자체가 작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주 작은 벌레. 파리가 앉아서 손바닥을 비비는 소리 같은 것은 자신보다 약자라는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지도 모른다. 만만하게 보인다. 그러면, 사냥하기 위해, 아주 사뿐사뿐 걸어온다. 암살자. 잠자리도 파리도 소리짱이 다가오는 걸 잘 파악하지 못한다. 눈이 없었다면, 나도 분명히 파악할 수 없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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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짱이랑 놀아줄때, 함께 눈을 감고 놀면 좋은 것이 있다. 소리짱에게, 시각은 일종의 '반칙' 같은 것이다. 소리짱은 자신의 위치를 숨기고 싶어한다. 조용히-, 조용히. 그렇지만, 나에게는 너무 쉽게 잘 보인다. 그럴때, 덥썩하고 소리짱을 잡는다거나, 하면, 자존심 비슷한 것이 상하는 것 같다. 짜증낸다. 시각을 가지고 자기를 만지는 손은 굉장히 무례한 손일 수가 있을 것 같다. 눈이 잘 보이는 고양이에게 다가갈때도, 손을 고양이 얼굴 모양으로 해서, 얼굴비비기를 손으로 하면서, 몸을 만지라고 하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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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짱은 놀이를 잘하고 싶어서, 많은 노력을 한다. 내가 장난감을 이리저리 옮기다가, 멈추면, 마지막으로 소리가 난 위치를 주목해서 보고 있다. 공격하려고 자세를 잡기는 하는데, 자신감이 없어진다, 저기 쯤에 있는데, 소리짱은 내가 가는 순간 도망갈 거 같은데, 한번에 뛰어서 정확하게 저 지점을 사냥해야 하는 숙제속에서 갈등한다. 결국 조금이라도 자신이 없어지면, 다음 기회를 노린다. 아주 신중한 사냥꾼이다. 소리짱은 가까운 거리에서는 굉장히 정확하게 추적해오기 때문에, 장난감을 멈추고 있을 수가 없다. 나는 시각이 있기 때문에, 소리짱의 공격이 느리게 느껴진다. 소리짱은 시각이 없다라는 핸디캡을 가지고, 나와 경쟁하기 때문에, 어느 순간 재미가 없어지기도 한다. 그럴때는, 나도 눈을 감고 게임에 참여하는 것도 좋다. 눈을 감으면, 우리는 동등해진다. 나는 장난감을 흔들다가 바닥에 내려놓는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포식자 앞에 놓인 어떤 작은 벌레의 심정을 떠올린다. 하늘에서 독수리처럼 나꿔채가는 그 포식자가 다가오는 소리를 나는 아직 듣지 못했는데, 내 몸은 그의 발톱에 어느새 찢겨져 있는 것이다. 으아. 눈을 감고 있으면, 소리짱이 다가오는 걸 전혀 파악할 수가 없다. 나는 소리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는 감각을 갖지 못한, 소리적으로 열등한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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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부딪히는 것을 조금 신경쓰기 시작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여기에는 몇번의 사건들이 계기가 되었을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탈리아에 여행 가서 사왔던 예쁜 찻잔이 테이블위에 있었는데, 소리짱이 테이블 위로 돌아다니다가, 밀어서 떨어뜨려서 깨뜨린 적이 있었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소리짱 정말 밉다고 나무랐다. 고래고래고래고래. 그런다음에는, 삼각형 네모가 그려진 또 다른 찻잔을 비슷한 방식으로 깨서 잃어버리게 되었는데, 애초에 테이블에서 떨어지기 쉽게 놓여져있던 것도 잘못이었지만, 나는 잘 탓하는 사람이었다. 너 때문이야. 너가 책임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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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부딪히는 것을 조금 신경쓰기 시작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여기에는 몇번의 사건들이 계기가 되었을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탈리아에 여행 가서 사왔던 예쁜 찻잔이 테이블위에 있었는데, 소리짱이 테이블 위로 돌아다니다가, 밀어서 떨어뜨려서 깨뜨린 적이 있었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소리짱 정말 밉다고 나무랐다. 고래고래고래고래. 그런다음에는, 삼각형 네모가 그려진 또 다른 찻잔을 비슷한 방식으로 깨서 잃어버리게 되었는데, 애초에 테이블에서 떨어지기 쉽게 놓여져있던 것도 잘못이었지만, 나는 잘 탓하는 사람이었다. 너 때문이야. 너가 책임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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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보니 그랬을까, 소리짱이 좀 위축된 걸까. 지금도 생각하면 속상하지만, 뭐 이미 벌어진 일을 어쩌겠나. 누구라도 탓하고 싶은 심정인 내 자신의 우울이 소리짱에게 씌워진 상황과 같은 것이다. 누구라도 탓하지 않으면, 누구라도 희생시키지 않으면 안될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내 안에 배긴, 어떤 자국, 어떤 상흔이 지금도 아주 다 낫지 못했다는 것을 계속해서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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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보니 그랬을까, 소리짱이 좀 위축된 걸까. 지금도 생각하면 속상하지만, 뭐 이미 벌어진 일을 어쩌겠나. 누구라도 탓하고 싶은 심정인 내 자신의 우울이 소리짱에게 씌워진 상황과 같은 것이다. 누구라도 탓하지 않으면, 누구라도 희생시키지 않으면 안될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내 안에 배긴, 어떤 자국, 어떤 상흔이 지금도 아주 다 낫지 못했다는 것을 계속해서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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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검은화면은 무언가, 뿌옇고, 흐리다. 모든 것들이 차분하게 내려앉아 있는가? 소리들이 눈을 잘 감고 있는가. 분자들이 잘, 숨쉬고 있는가. 열쇠가, 전구가, 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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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검은화면은 무언가, 뿌옇고, 흐리다. 모든 것들이 차분하게 내려앉아 있는가? 소리들이 눈을 잘 감고 있는가. 분자들이 잘, 숨쉬고 있는가. 열쇠가, 전구가, 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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