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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oho Yi 2020-05-22 19:18:3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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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i 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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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2, 17:03:08, +0900 | 2020/05/22, 17:03: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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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에 사는 고양이의 이름은 '소리'라고 한다. 하지만, '소리야' 하고 부르는 일은 평생 거의 없었고, 언제나 '소리-짱' 이라고, 짱즈케를 한다. 이름을 갓 지은때는, '소리-이!', '소리-야!' 하고 불러보기도 했었는데, 자꾸 첫음절에 강세가 붙어서, '소리'가 '쏘리'가 되는 현상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 '쏘리~!' 이렇게 되는데, 영어로 '미안해, 유감이다'라는 의미가 된다. 마치, '유감스러운 존재'라는 의미가 되는 것 같아서 그렇게 부르는 것을 기피하게 된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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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이름 잘못지었어. 이름 바꿔야겠어.'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동물병원에도 그렇게 등록되었고, 주변 사람들도 다들 그렇게 알고 있어서, 사태가 커져버렸던 터였고, 막상 다른 이름을 생각해도 '소리'라는 이름으로 돌아와버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실, 그런 의미론적인 생각들은 우리들의 머리속에서만 일어나는 것이지, 소리-짱은 그다지 상관하는 것 같지 않았던 것도 한 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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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놔. 이름같은 거, 한번 정했으면, 끝이야. 뭘 또 왜 바꿔. 인간 정부 물러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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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들이 자기 편하게 붙인 이름이 인간들의 언어로 무슨 의미를 가지던 그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소리짱'에게 '소리'라는 음향은 어떤 호출-소리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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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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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짱을 만난 것은, 2016년 10월 어느날, 문래동 기계공장들이 많은 골목의 어느 한켠, 창고를 작업실로 쓰고 있었던 시절의 일이었다. 겨울이 오려는가 바람도 세차고, 제법 쌀쌀한 날이었다. 작업실에는 화목난로가 있었고, 장작을 두어개 태우면서, 온기를 가늠하고 있었다. 작업실로 사용하던 창고는 큰 길가에 나온 점포들의 뒤켠에 있었기 때문에, 점포들의 사잇길로 한 번 들어오는 좁은 골목길을 지나서 들어오게 되어있었다. 이 좁은 골목길에는 작업실 공간 외에도, 사람 사는 집들도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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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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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은 아마도 어딘가에 가볍게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는가 보다. 흐린 날씨에 늦은 오후 햇살이 골목길에 내려앉는 것을 거절하듯이, 어떤 작은 생명체가 비명에 가까운 울음을 내뿜고 있었다. 손바닥만한 작은 고양이가 텅 빈 골목길을 향해서, 텅 빈 하늘을 향해서, 찢어지는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우리는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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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너 괜찮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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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작은 고양이는 얼굴이 망가져있었다. 우리가 있는 것을 알기는 하는 것 같은데, 대답이나, 태도에 변화가 없다. 아니, 어쩌면, 우리를 향해서, 고함을 치기 시작한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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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 떨어져서 다쳤나봐.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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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네, 일단 작업실에 들어가자. 엄마 고양이가 올 수도 있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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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몸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골목이 쩌렁쩌렁하게 울려서, 누가 와도 벌써 왔어야 할 것 같은데, 엄마 고양이는 다른 사정이 있는지 나타나지 않고, 따듯한 작업실에 앉아서,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우리들도 안절부절이었다. 나는 계속 망설이고 있었던 편이었는데, 원정씨는 참다 못했는지, 셔터 문을 열고, 다시 골목길로 나가서 소리나는 쪽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다시 그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나도 뒤늦게 뒤를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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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작업실에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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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친구는 그 말을 듣기도 전에 이미 마음을 정한 것만 같이, '나를 구해줘.' 아니, '나를 구하라!' 라고 명령하듯이 우리들에게 외치고 있었다. 우리들은 약간의 손짓과 몸짓을 써서, '나를 따라와' 라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자, 그 생명체는 작은 몸뚱아리에 붙어있는 곧 부러질 것 같은 네개의 다리를 바닥에 거칠게 내동댕이 치면서,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집요하고 단호한 걸음을 딛어 가면서, 우리의 뒤를 따라 들어왔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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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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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업실에 들어와서도 광기는 금방 가라앉지 않았다. 쌩쌩불던 바람은 피하는데 성공했지만, 돌바닥이 차다. 뭔가 따뜻한 담요 같은 것을 차가운 돌바닥에 깔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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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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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기가 남아있는 화목난로 옆에 자리를 마련했다. 담요는 일단 사양하는 것 같았지만, 화목난로는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난로의 온기가 머무는 공간에 한 켠에 병든 병아리처럼, 엉거주춤하게 멈춰서서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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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제서야, 마침내, 정적이 찾아왔다. 세상도 한숨을 내리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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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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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를 키워본적은 없었지만, 예전 작업실에서 같이 작업실을 쓰던 분이 기르던 고양이가 두 마리 있었다. 그 고양이들도 손바닥만큼 작을 때 부터 길러졌는데, 몇번 주인분의 부탁으로 돌봐준적이 있기는 했었다. 이제는 베테랑 캣맘이 되신 그 분께 긴급연락을 취해서,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구했다. 만화에서 본 대로, 우유를 따듯하게 데워서, 먹으라고 줬는데, 냄새만 맡고 먹지는 않는다. 다만, 화목난로 옆에서 쉬고 있는 소리짱은 이따금씩 힘주어 웅크린 몸을 버티지 못하고, 균형을 잃는 몸짓을 보였다. 지금 비틀거린건지, 아니면 꾸벅하고 졸고 있는 건지 말이 안통하니 물어볼 수도 없고 조금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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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얼굴 한 쪽이 상처 딱지 같은 것으로 덮여있기도 했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동물병원을 수소문했다. 베테랑 캣맘 지인의 추천으로 소개 받은 동물병원에서는 길냥이를 인보하는 조건으로 치료비와 수술비를 크게 할인해주셨다. 여기서 '수술' 이란, 안구적출 수술을 말하는 것이었다. 소리짱은 허피스 바이러스 감염이었는데, 이를 눈치챈 어미고양이가 다른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밀어냈을 것이라고 의사선생님은 말했다. 게다가, 발견된 시기에는 이미 한쪽눈은 실명한 상태였고, 나머지 한쪽 눈은 백내장이 심하게 왔는데, 약을 써서 치료해보겠다고 하셨지만, 치료후 시력을 살리는데 실패하고, 다시, 적출수술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갑자기 소리짱은 시력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때, 우리는 '소리'라는 이름을 마음속으로 정하고 있었다. 소리짱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줄 이름,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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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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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짱의 병원비는 소리짱이 받은 치료의 내용에 비하면, 정말 저렴한 금액이었지만, 아무 계획도 없이 이 상황을 맞닥드린 우리에게는 상당히 부담이 되는 지출이었다. 고민끝에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모금활동을 하게 되었다. 지출한 비용의 일부분만이라도 후원 받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소식을 접한 많은 분들이 다들 큰 돈을 보내주셔서, 아차하는 사이에 전액이 모금되어버렸다. 정말 아차, 하면 원래 지출한 액수보다도 더 많이 모일 위험에 처할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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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소리짱, 축복받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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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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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상, 길고양이를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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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이쁘다, 우리 집에 갈래?' 하고 추파를 던지면서, 다녔던 나였지만, 이렇게 소리짱을 갑자기 책임지게 되니, 고민이 되게 되었다. 밤새고 집에 안들어가는 날도 많고, 해외 여행 갈때도 있고, 지방출장도 가고, 내 한 몸 데리고 살기도 정신이 없는데, 부담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일단 소리짱이 아프니까, 나을 때까지는 같이 있어야지.' 다 낫고 나면, 다시 생각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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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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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짱은 영양실조여서 수액도 맞고, 수술을 잘 마쳤다고는 하지만, 집에 와서도 기운이 전혀 없어서, 살아날 수 있는 걸까? 걱정하게 했다. 눈이 안보이는 상태로, 사람과 같이 사는 고양이 수업을 받아야 했다. 화장실 모래에 쉬하는 법을 어떻게 가르쳐줘야 하나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모래를 촉각으로 감지하자 금방 참았던 쉬를 하고, 모레를 덥고 아주 잘하는 걸 보고 놀라웠다. 반면, 소리짱은 너무 어릴때 엄마와 헤어져서, 젖을 떼지 못했기 때문에, 음식물을 핧아서 먹어본적이 없어서, 한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영양실조가 심해지는 헤프닝도 겪었다. 병원에서 초유를 손가락에 찍어서 입에 발라주면서 먹는 법을 가르쳐주자, 봇물터지듯이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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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세 가지가 충족되자, 마침내, 몸도 좋아지고, 수술상처도 좋아지고 있었다. 우리들도 거칠지만, 이것저것 배우고, 나아지고 있었다. 지인들에게 물어보고, 인터넷도 찾아본다. 다만, 소리짱은 눈이 안보이니까, 그 모든 비장애고양이들에게 맞춰진 가이드들이 지시하는 내용을 한 단계 의미화시킨 후에 소리와 촉각으로 번역하는 과정을 거쳐야했다. 그 와중에 어떤 것이 잘된 번역이고, 어떤 것은 잘못된 번역인지도 시행착오를 통해서 배워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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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집에 사는 고양이의 이름은 '소리'라고 한다. 하지만, '소리야' 하고 부르는 일은 평생 거의 없었고, 언제나 '소리-짱' 이라고, 짱즈케를 한다. 이름을 갓 지은때는, '소리-이!', '소리-야!' 하고 불러보기도 했었는데, 자꾸 첫음절에 강세가 붙어서, '소리'가 '쏘리'가 되는 현상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 '쏘리~!' 이렇게 되는데, 영어로 '미안해, 유감이다'라는 의미가 된다. 마치, '유감스러운 존재'라는 의미가 되는 것 같아서 그렇게 부르는 것을 기피하게 된 것도 있다. 2020/05/22, 19:17:44, +0900
'아, 이름 잘못지었어. 이름 바꿔야겠어.'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동물병원에도 그렇게 등록되었고, 주변 사람들도 다들 그렇게 알고 있어서, 사태가 커져버렸던 터였고, 막상 다른 이름을 생각해도 '소리'라는 이름으로 돌아와버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실, 그런 의미론적인 생각들은 우리들의 머리속에서만 일어나는 것이지, 소리-짱은 그다지 상관하는 것 같지 않았던 것도 한 몫했다.
'아놔. 이름같은 거, 한번 정했으면, 끝이야. 뭘 또 왜 바꿔. 인간 정부 물러가라!'
인간들이 자기 편하게 붙인 이름이 인간들의 언어로 무슨 의미를 가지던 그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소리짱'에게 '소리'라는 음향은 어떤 호출-소리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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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짱을 만난 것은, 2016년 10월 어느날, 문래동 기계공장들이 많은 골목의 어느 한켠, 창고를 작업실로 쓰고 있었던 시절의 일이었다. 겨울이 오려는가 바람도 세차고, 제법 쌀쌀한 날이었다. 작업실에는 화목난로가 있었고, 장작을 두어개 태우면서, 온기를 가늠하고 있었다. 작업실로 사용하던 창고는 큰 길가에 나온 점포들의 뒤켠에 있었기 때문에, 점포들의 사잇길로 한 번 들어오는 좁은 골목길을 지나서 들어오게 되어있었다. 이 좁은 골목길에는 작업실 공간 외에도, 사람 사는 집들도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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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아마도 어딘가에 가볍게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는가 보다. 흐린 날씨에 늦은 오후 햇살이 골목길에 내려앉는 것을 거절하듯이, 어떤 작은 생명체가 비명에 가까운 울음을 내뿜고 있었다. 손바닥만한 작은 고양이가 텅 빈 골목길을 향해서, 텅 빈 하늘을 향해서, 찢어지는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우리는 말을 걸었다,
"안녕, 너 괜찮니?"
그 작은 고양이는 얼굴이 망가져있었다. 우리가 있는 것을 알기는 하는 것 같은데, 대답이나, 태도에 변화가 없다. 아니, 어쩌면, 우리를 향해서, 고함을 치기 시작한 것 같기도 하고.
"위에서 떨어져서 다쳤나봐. 어떡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네, 일단 작업실에 들어가자. 엄마 고양이가 올 수도 있고 하니."
작은 몸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골목이 쩌렁쩌렁하게 울려서, 누가 와도 벌써 왔어야 할 것 같은데, 엄마 고양이는 다른 사정이 있는지 나타나지 않고, 따듯한 작업실에 앉아서,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우리들도 안절부절이었다. 나는 계속 망설이고 있었던 편이었는데, 원정씨는 참다 못했는지, 셔터 문을 열고, 다시 골목길로 나가서 소리나는 쪽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다시 그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나도 뒤늦게 뒤를 밟았다.
"우리 작업실에 갈래?"
그 친구는 그 말을 듣기도 전에 이미 마음을 정한 것만 같이, '나를 구해줘.' 아니, '나를 구하라!' 라고 명령하듯이 우리들에게 외치고 있었다. 우리들은 약간의 손짓과 몸짓을 써서, '나를 따라와' 라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자, 그 생명체는 작은 몸뚱아리에 붙어있는 곧 부러질 것 같은 네개의 다리를 바닥에 거칠게 내동댕이 치면서,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집요하고 단호한 걸음을 딛어 가면서, 우리의 뒤를 따라 들어왔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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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에 들어와서도 광기는 금방 가라앉지 않았다. 쌩쌩불던 바람은 피하는데 성공했지만, 돌바닥이 차다. 뭔가 따뜻한 담요 같은 것을 차가운 돌바닥에 깔아주었다.
"이쪽으로.."
온기가 남아있는 화목난로 옆에 자리를 마련했다. 담요는 일단 사양하는 것 같았지만, 화목난로는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난로의 온기가 머무는 공간에 한 켠에 병든 병아리처럼, 엉거주춤하게 멈춰서서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마침내, 정적이 찾아왔다. 세상도 한숨을 내리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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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키워본적은 없었지만, 예전 작업실에서 같이 작업실을 쓰던 분이 기르던 고양이가 두 마리 있었다. 그 고양이들도 손바닥만큼 작을 때 부터 길러졌는데, 몇번 주인분의 부탁으로 돌봐준적이 있기는 했었다. 이제는 베테랑 캣맘이 되신 그 분께 긴급연락을 취해서,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구했다. 만화에서 본 대로, 우유를 따듯하게 데워서, 먹으라고 줬는데, 냄새만 맡고 먹지는 않는다. 다만, 화목난로 옆에서 쉬고 있는 소리짱은 이따금씩 힘주어 웅크린 몸을 버티지 못하고, 균형을 잃는 몸짓을 보였다. 지금 비틀거린건지, 아니면 꾸벅하고 졸고 있는 건지 말이 안통하니 물어볼 수도 없고 조금 답답했다.
일단, 얼굴 한 쪽이 상처 딱지 같은 것으로 덮여있기도 했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동물병원을 수소문했다. 베테랑 캣맘 지인의 추천으로 소개 받은 동물병원에서는 길냥이를 인보하는 조건으로 치료비와 수술비를 크게 할인해주셨다. 여기서 '수술' 이란, 안구적출 수술을 말하는 것이었다. 소리짱은 허피스 바이러스 감염이었는데, 이를 눈치챈 어미고양이가 다른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밀어냈을 것이라고 의사선생님은 말했다. 게다가, 발견된 시기에는 이미 한쪽눈은 실명한 상태였고, 나머지 한쪽 눈은 백내장이 심하게 왔는데, 약을 써서 치료해보겠다고 하셨지만, 치료후 시력을 살리는데 실패하고, 다시, 적출수술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갑자기 소리짱은 시력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때, 우리는 '소리'라는 이름을 마음속으로 정하고 있었다. 소리짱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줄 이름,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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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짱의 병원비는 소리짱이 받은 치료의 내용에 비하면, 정말 저렴한 금액이었지만, 아무 계획도 없이 이 상황을 맞닥드린 우리에게는 상당히 부담이 되는 지출이었다. 고민끝에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모금활동을 하게 되었다. 지출한 비용의 일부분만이라도 후원 받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소식을 접한 많은 분들이 다들 큰 돈을 보내주셔서, 아차하는 사이에 전액이 모금되어버렸다. 정말 아차, 하면 원래 지출한 액수보다도 더 많이 모일 위험에 처할 뻔 했다.
'오, 소리짱, 축복받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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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길고양이를 보면,
'오, 이쁘다, 우리 집에 갈래?' 하고 추파를 던지면서, 다녔던 나였지만, 이렇게 소리짱을 갑자기 책임지게 되니, 고민이 되게 되었다. 밤새고 집에 안들어가는 날도 많고, 해외 여행 갈때도 있고, 지방출장도 가고, 내 한 몸 데리고 살기도 정신이 없는데, 부담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일단 소리짱이 아프니까, 나을 때까지는 같이 있어야지.' 다 낫고 나면, 다시 생각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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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짱은 영양실조여서 수액도 맞고, 수술을 잘 마쳤다고는 하지만, 집에 와서도 기운이 전혀 없어서, 살아날 수 있는 걸까? 걱정하게 했다. 눈이 안보이는 상태로, 사람과 같이 사는 고양이 수업을 받아야 했다. 화장실 모래에 쉬하는 법을 어떻게 가르쳐줘야 하나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모래를 촉각으로 감지하자 금방 참았던 쉬를 하고, 모레를 덥고 아주 잘하는 걸 보고 놀라웠다. 반면, 소리짱은 너무 어릴때 엄마와 헤어져서, 젖을 떼지 못했기 때문에, 음식물을 핧아서 먹어본적이 없어서, 한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영양실조가 심해지는 헤프닝도 겪었다. 병원에서 초유를 손가락에 찍어서 입에 발라주면서 먹는 법을 가르쳐주자, 봇물터지듯이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세 가지가 충족되자, 마침내, 몸도 좋아지고, 수술상처도 좋아지고 있었다. 우리들도 거칠지만, 이것저것 배우고, 나아지고 있었다. 지인들에게 물어보고, 인터넷도 찾아본다. 다만, 소리짱은 눈이 안보이니까, 그 모든 비장애고양이들에게 맞춰진 가이드들이 지시하는 내용을 한 단계 의미화시킨 후에 소리와 촉각으로 번역하는 과정을 거쳐야했다. 그 와중에 어떤 것이 잘된 번역이고, 어떤 것은 잘못된 번역인지도 시행착오를 통해서 배워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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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검은화면은 무언가, 뿌옇고, 흐리다. 모든 것들이 차분하게 내려앉아 있는가? 소리들이 눈을 잘 감고 있는가. 분자들이 잘, 숨쉬고 있는가. 열쇠가, 전구가, 쨈이. | 오늘의 검은화면은 무언가, 뿌옇고, 흐리다. 모든 것들이 차분하게 내려앉아 있는가? 소리들이 눈을 잘 감고 있는가. 분자들이 잘, 숨쉬고 있는가. 열쇠가, 전구가, 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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