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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oho Yi 2020-05-22 18:23:3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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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1 +5,11 @@ sori
우리 집에 사는 고양이의 이름은 '소리'라고 한다. 하지만, '소리야' 하고 부르는 일은 평생 거의 없었고, 언제나 '소리-짱' 이라고, 짱즈케를 한다. 이름을 갓 지은때는, '소리-이!', '소리-야!' 하고 불러보기도 했었는데, 자꾸 첫음절에 강세가 붙어서, '소리'가 '쏘리'가 되는 현상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 '쏘리~!' 이렇게 되는데, 영어로 '미안해, 유감이다'라는 의미가 된다. 마치, '유감스러운 존재'라는 의미가 되는 것 같아서 그렇게 부르는 것을 기피하게 된 것도 있다.
'아, 이름 잘못지었어. 이름 바꿔야겠어.' 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이미, 동물병원에도 그렇게 등록되었고, 주변 사람들도 다들 그렇게 알고 있어서, 사태가 커져버렸던 터였고, 막상 다른 이름을 생각해도 '소리'라는 이름으로 돌아와버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실, 그런 의미론적인 생각들은 우리들의 머리속에서만 일어나는 것이지, 소리-짱은 그다지 상관하는 것 같지 않았던 것도 한 몫했다.
'아, 이름 잘못지었어. 이름 바꿔야겠어.'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동물병원에도 그렇게 등록되었고, 주변 사람들도 다들 그렇게 알고 있어서, 사태가 커져버렸던 터였고, 막상 다른 이름을 생각해도 '소리'라는 이름으로 돌아와버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실, 그런 의미론적인 생각들은 우리들의 머리속에서만 일어나는 것이지, 소리-짱은 그다지 상관하는 것 같지 않았던 것도 한 몫했다.
'아놔. 이름같은 거, 한번 정했으면, 끝이야. 뭘 또 왜 바꿔. 인간 정부 물러가라!'
인간들이 자기 편하게 붙인 이름이 인간들의 언어로 무슨 의미를 가지던 그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소리짱'에게 '소리'라는 음향은 어떤 '호출'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인간들이 자기 편하게 붙인 이름이 인간들의 언어로 무슨 의미를 가지던 그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소리짱'에게 '소리'라는 음향은 어떤 호출-소리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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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7 +29,7 @@ sori
작은 몸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골목이 쩌렁쩌렁하게 울려서, 누가 와도 벌써 왔어야 할 것 같은데, 엄마 고양이는 다른 사정이 있는지 나타나지 않고, 따듯한 작업실에 앉아서,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우리들도 안절부절이었다. 나는 계속 망설이고 있었던 편이었는데, 원정씨는 참다 못했는지, 셔터 문을 열고, 다시 골목길로 나가서 소리나는 쪽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다시 그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나도 뒤늦게 뒤를 밟았다.
"우리 에 갈래?"
"우리 작업실에 갈래?"
그 친구는 그 말을 듣기도 전에 이미 마음을 정한 것만 같이, '나를 구해줘.' 아니, '나를 구하라!' 라고 명령하듯이 우리들에게 외치고 있었다. 우리들은 약간의 손짓과 몸짓을 써서, '나를 따라와' 라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자, 그 생명체는 작은 몸뚱아리에 붙어있는 곧 부러질 것 같은 네개의 다리를 바닥에 거칠게 내동댕이 치면서,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집요하고 단호한 걸음을 딛어 가면서, 우리의 뒤를 따라 들어왔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