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ff --git a/content/pages/sori/index.txt b/content/pages/sori/index.txt index 7b142f3..060dd31 100644 --- a/content/pages/sori/index.txt +++ b/content/pages/sori/index.txt @@ -1,7 +1,7 @@ -= -1 -= +======= +1 : 만남 +======= 우리 집에 사는 고양이의 이름은 '소리'라고 한다. 하지만, '소리야' 하고 부르는 일은 평생 거의 없었고, 언제나 '소리-짱' 이라고, 짱즈케를 한다. 이름을 갓 지었을 때는, '소리-이!', '소리-야!' 하고 불러보기도 했었는데, 자꾸 첫음절에 강세가 붙어서, '소리'가 '쏘리'가 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면, 영어로 '미안해, 유감이다'라는 의미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그런 발음을 피하려고 하다보니, '소리짱'이 된 것도 있다. @@ -43,13 +43,13 @@ 그제서야, 마침내, 정적이 찾아왔다. 세상도 한숨을 내리쉬었다. -= -2 -= +======= +2 : 시작 +======= 고양이를 키워본 적은 없었지만, 예전 작업실에서 같이 작업실을 쓰던 분이 기르던 고양이가 두 마리 있었다. 그 고양이들도 손바닥만큼 작을 때 부터 길러졌는데, 몇번 주인분의 부탁으로 돌봐준적이 있기는 했었다. 이제는 베테랑 캣맘이 되신 그 분께 긴급연락을 취해서,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구했다. 만화책에서 본 대로,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서, 먹으라고 줬는데, 냄새만 맡고 먹지는 않는다. 다만, 화목난로 옆에서 오똑이처럼 서서 쉬고 있는 소리짱은 이따금씩 웅크린 몸의 균형을 잃는 듯한 동작을 했다. 지금 비틀거린건지, 아니면 꾸벅하고 졸고 있는 건지 잘 가늠할 수가 없었다. -일단, 얼굴 한 쪽이 상처 딱지 같은 것으로 덮여있어서 치료가 시급해 보였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동물병원을 수소문했다. 베테랑 캣맘 지인의 추천으로 소개 받은 동물병원에서는 길냥이를 인보하는 조건으로 치료비와 수술비를 크게 할인해주셨다. 여기서 '수술' 이란, 안구적출 수술을 말하는 것이었다. 소리짱은 허피스 바이러스 감염이었는데, 이를 눈치챈 어미고양이가 다른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무리로부터 밀어내어 버린 것이라고 의사선생님은 말했다. 게다가, 발견된 시기에 이미 한쪽 눈은 실명한 상태였고, 나머지 한쪽 눈도 백내장이 심하게 온 상태여서, 조금이라도 시력을 살릴 수 있을지, 약을 써서 치료해보시겠다고 하셨지만, 며칠 후, 전화로 치료경과가 좋지 않아서, 서둘러 수술할 수 밖에 없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갑자기 소리짱은 시각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때, 우리는 '소리'라는 이름을 마음속으로 정하고 있었다. 소리짱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줄 존재의 이름, '소리' +일단, 얼굴 한 쪽이 상처 딱지 같은 것으로 덮여있어서 치료가 시급해 보였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동물병원을 수소문했다. 베테랑 캣맘 지인의 추천으로 소개 받은 동물병원에서는 길냥이를 인보하는 조건으로 치료비와 수술비를 크게 할인해주셨다. 여기서 '수술' 이란, 안구적출 수술을 말하는 것이었다. 소리짱은 허피스 바이러스 감염이었는데, 이를 눈치챈 어미고양이가 다른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무리로부터 밀어내어 버린 것이라고 의사선생님은 말했다. 게다가, 발견된 시기에 이미 한쪽 눈은 실명한 상태였고, 나머지 한쪽 눈도 백내장이 심하게 온 상태여서, 조금이라도 시력을 살릴 수 있을지, 약을 써서 치료해 보겠노라고 하셨지만, 며칠 후, 전화로 상태가 악화되어서 나머지 한쪽 눈도 수술할 수 밖에 없다고 하셨다. 그렇게, 갑자기 소리짱은 시각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때, 우리는 '소리'라는 이름을 마음속으로 정하고 있었다. 소리짱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줄 존재의 이름, '소리' * @@ -57,6 +57,8 @@ '오, 소리짱, 축복받았네.' +수많은 이모, 삼촌들이 작업실을 찾아와서, 맛있는 것들과 선물들을 남겨주고 가셨다. + * 평소에, 길고양이를 보면, @@ -65,22 +67,30 @@ * -소리짱은 영양실조여서 수액도 맞고, 수술을 잘 마쳤다고는 하지만, 집에 와서도 기운이 전혀 없어서, 살아날 수 있는 걸까? 걱정하게 했다. 눈이 안보이는 상태로, 사람과 같이 사는 고양이 수업을 받아야 했다. 화장실 모래에 쉬하는 법을 어떻게 가르쳐줘야 하나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모래를 촉각으로 감지하자 금방 참았던 쉬를 하고, 모레를 덥고 아주 잘하는 걸 보고 놀라웠다. 반면, 소리짱은 너무 어릴때 엄마와 헤어져서, 젖을 떼지 못했기 때문에, 음식물을 핧아서 먹어본적이 없어서, 한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영양실조가 심해지는 헤프닝도 겪었다. 병원에서 초유를 손가락에 찍어서 입에 발라주면서 먹는 법을 가르쳐주자, 봇물터지듯이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세 가지가 충족되자, 마침내, 몸도 좋아지고, 수술상처도 좋아지고 있었다. 우리들도 거칠지만, 이것저것 배우고, 나아지고 있었다. 지인들에게 물어보고, 인터넷도 찾아본다. 다만, 소리짱은 눈이 안보이니까, 그 모든 비장애고양이들에게 맞춰진 가이드들이 지시하는 내용을 한 단계 의미화시킨 후에 소리와 촉각으로 번역하는 과정을 거쳐야했다. 그 와중에 어떤 것이 잘된 번역이고, 어떤 것은 잘못된 번역인지도 시행착오를 통해서 배워야만 했다. - -* -살기 위한 투쟁이었다. 사료를 먹는 법을 배운 소리짱은 점점 회복에 속도를 붙여나갔다. 어린 생명은 회복도 빠르다. 소리짱은 하루 종일 잠을 잤다. 먹는 일이 끝나면, 다시 잔다. 고양이가 영양실조에 걸리면, 등가죽을 당겨보라고 병원에서 배웠다. 등가죽이 제자리로 빠르게 돌아간다면, 괜찮은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한다. 한번씩 녀석의 등가죽을 당겨본다. 다행히, 영양실조는 잘 넘긴것 같았다. +소리짱은 수술을 잘 마쳤다고는 하지만, 영양실조여서 수액을 맞으면서 입원치료도 받고 퇴원했다. 집에 와서도 기운이 전혀 없어서, '잘 회복할 수 있으려나', 걱정하게 했다. 게다가, 눈이 안보이는 상태에서, 사람과 같이 사는 고양이 수업도 받아야 했다. 화장실 모래에 쉬하는 법을 어떻게 가르쳐줘야 하나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모래를 촉각으로 감지하자 금방 참았던 쉬를 하고, 모래를 덥고 아주 익숙하게 잘하는 걸 보니 놀라웠다. +반면, 밥을 잘 안먹는 바람에 영양실조가 다시 생기려고 했다. 고양이가 영양실조에 걸리면, 등가죽을 손으로 움켜잡은 후에 놓고, 등가죽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모양을 관찰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빠르게 돌아간다면, 괜찮은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한다. 한번씩 녀석의 등가죽을 당겨보면서, 사료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어디 다른 곳이 아픈데가 있는 것인지 초조한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은 다시 병원에 데리고 갔다. +문제는 뜻밖에 먹이가 제공되는 형식에 있었다. 소리짱은 젖을 떼기 전에 엄마와 헤어져서, 빨아서 먹던 젖 이외에, 그릇에서 핧아서 섭취하는 음식물이란 것을 경험해 본적이 없었다. 병원에서는 고양이 간호사분이 초유를 손가락에 찍어서 입에 톡톡 발라주면서 먹는 것이라는 가르쳐주었고 그제서야, 소리짱은 봇물터지듯이 그릇에 담긴 음식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 -소리짱과 우리 사이의 관계에는 아직 즐거움이란 없었다. 우리는 항상 소리짱을 괴롭히는 사람들이었다. 병원에 강제로 데려가고, 입원을 시키고, 수술을 시키고, 약을 먹이고, '사료'라는 이상한 음식을 먹으라고 하고, 화장실을 사용하라고 하고, 그러고 나면 피곤해서, 잠을 잤다. - -몸이 회복되면서, 서서히 우리들도 소리짱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무언가를 시도해보기도 했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세 가지가 충족되자, 마침내, 몸도 좋아지고, 수술상처도 좋아지고 있었다. 우리들도 거칠지만, 이것저것 배우고, 나아지고 있었다. 지인들에게 물어보고, 인터넷도 찾아본다. 다만, 소리짱은 눈이 안보이니까, 그 모든 비장애고양이들에게 맞춰진 가이드들이 지시하는 내용들을 한 단계 의미화시킨 후에 소리와 촉각으로 번역하는 과정을 거쳐야했다. 그 와중에 어떤 것이 잘된 번역이고, 어떤 것은 잘못된 번역인지도 시행착오를 통해서 배워야만 했다. * -손으로 놀아주기. 소리로 놀아주기. 소리극. +사료를 먹는 법을 배운 소리짱은 점점 회복에 속도를 붙여나갔다. 처음 만났을 때, 보여주었던 삶을 향한 투지가 다시금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이번엔 회복을 향한 투지. 소리짱은 아주 열심히 먹고, 아주 열심히 잠을 잔다. 일어나면, 다시 먹고, 그러고 나면, 또 하루 종일 잠만 잔다. + +* + +소리짱과 우리 사이의 관계는 아직 시작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항상 소리짱을 괴롭히는 사람들이었다. 병원에 강제로 데려가고, 입원을 시키고, 수술을 시키고, 약을 먹이고, '사료'라는 이상한 음식을 먹으라고 하고, 화장실을 사용하라고 하고, 그러고 나면 피곤해져서, 다 같이 잠을 잤다. 일단은, 어서 건강해지기를. + +하지만, 소리짱은 한없이 우울해보였다. 엄마한테 버림 받고, 형제들이랑 떨어져서, 고생도 많이해서 그런지, 하루 종일 잠만 자는 녀석의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우울은 절망에 가까운 것이었다. 참다 못한, 우리들은 뭐라도 좋으니, 말을 걸어보기로 한다. + +======= +3 : 감각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