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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oho Yi 2020-06-08 01:39:5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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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it 5b5dfab1c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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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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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사는 고양이의 이름은 '소리'라고 한다. 하지만, '소리야' 하고 부르는 일은 평생 거의 없었고, 언제나 '소리-짱' 이라고, 짱즈케를 한다. 이름을 갓 지었을 때는, '소리-이!', '소리-야!' 하고 불러보기도 했었는데, 자꾸 첫음절에 강세가 붙어서, '소리'가 '쏘리'가 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면, 영어로 '미안해, 유감이다'라는 의미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그런 발음을 피하려고 하다보니, '소리짱'이 된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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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가 남아있는 화목난로 옆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지만, 담요는 거절당했다. 다만, 화목난로는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난로의 온기가 머무는 공간의 한 모서리에 병든 병아리처럼, 엉거주춤하게 멈춰서서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마침내, 정적이 찾아왔다. 세상도 한숨을 내리쉬었다.
2: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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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키워본 적은 없었지만, 예전 작업실에서 같이 작업실을 쓰던 분이 기르던 고양이가 두 마리 있었다. 그 고양이들도 손바닥만큼 작을 때 부터 길러졌는데, 몇번 주인분의 부탁으로 돌봐준적이 있기는 했었다. 이제는 베테랑 캣맘이 되신 그 분께 긴급연락을 취해서,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구했다. 만화책에서 본 대로,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서, 먹으라고 줬는데, 냄새만 맡고 먹지는 않는다. 다만, 화목난로 옆에서 오똑이처럼 서서 쉬고 있는 소리짱은 이따금씩 웅크린 몸의 균형을 잃는 듯한 동작을 했다. 지금 비틀거린건지, 아니면 꾸벅하고 졸고 있는 건지 잘 가늠할 수가 없었다.
일단, 얼굴 한 쪽이 상처 딱지 같은 것으로 덮여있어서 치료가 시급해 보였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동물병원을 수소문했다. 베테랑 캣맘 지인의 추천으로 소개 받은 동물병원에서는 길냥이를 인보하는 조건으로 치료비와 수술비를 크게 할인해주셨다. 여기서 '수술' 이란, 안구적출 수술을 말하는 것이었다. 소리짱은 허피스 바이러스 감염이었는데, 이를 눈치챈 어미고양이가 다른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무리로부터 밀어내어 버린 것이라고 의사선생님은 말했다. 게다가, 발견된 시기에 이미 한쪽 눈은 실명한 상태였고, 나머지 한쪽 눈도 백내장이 심하게 온 상태여서, 조금이라도 시력을 살릴 수 있을지, 약을 써서 치료해 보겠노라고 하셨지만, 며칠 후, 전화로 상태가 악화되어서 나머지 한쪽 눈도 수술할 수 밖에 없다고 하셨다. 그렇게, 갑자기 소리짱은 시각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때, 우리는 '소리'라는 이름을 마음속으로 정하고 있었다. 소리짱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줄 존재의 이름,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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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짱과 우리 사이의 관계는 아직 시작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항상 소리짱을 괴롭히는 사람들이었다. 병원에 강제로 데려가고, 입원을 시키고, 수술을 시키고, 약을 먹이고, '사료'라는 이상한 음식을 먹으라고 하고, 화장실을 사용하라고 하고, 그러고 나면 피곤해져서, 다 같이 잠을 잤다. 일단은, 어서 건강해지기를.
하지만, 소리짱은 한없이 우울해보였다. 엄마한테 버림 받고, 형제들이랑 떨어져서, 고생도 많이해서 그런지, 하루 종일 잠만 자는 녀석의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우울은 절망에 가까운 것이었다. 살아 남기는 했는데, 무슨 낙으로 살아야 할지 막막해 하는 것 같았다.
3:추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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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돌봄이 필요한데, 집에 혼자 둘수가 없어서, 작업실로 함께 출퇴근을 했다. 처음에는 이동장에 넣어서, 자전거 뒤에 싣고, 이동했었는데, 엄청나게 울고, 이동장 안에 쉬도 하고, 뭔가 스트레스가 엄청난 것 같았다. 한번은 이동장에 안들어가려고 하면서 내 몸에 찰싹 들러붙길래, 그대로 내가 즐겨 입던 초록색 솜잠바 속에 소리짱을 넣고 자크를 올리고 자전거를 탔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12월이었다. 지금도 소리짱이 그 자켓은 기억하는 것 같다. 원래는 고양이를 데리고 외부에서 이동할 때는 고양이가 놀라면 찻길로 튀어 나가기 때문에, 반드시 이동장에 넣거나, 몸줄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몸줄 같은 게 없기도 했고 소리짱은 피부에 최대한 가깝게 붙어서, 심장소리나, 온기를 느끼지 않으면, 안심이 안되는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더 안전해보자고, 잠바의 자크를 꽉 올려서 채우려고 하면, 소리짱은 저항하면서 자켓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바깥 바람을 맞겠다고 했다. 우리는 소리짱이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야, 자전거 태워주니까, 오백원 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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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미안."
이미 늦었지만, 마지막 한 판은, 나도 눈을 감고 게임에 참여해 본다. 내가 눈을 감으면, 우리는 동등해진다. 나는 장난감을 흔들다가 바닥에 내려놓는다. 귀를 쫑긋 세워서 소리짱을 들어본다. 나는 아무것도 들을 수가 없다. 숨을 죽이며, 포식자 앞에 놓인 어떤 작은 벌레의 심정을 떠올린다. 하늘에서 독수리처럼 나꿔채가는 그 포식자가 다가오는 소리를 나는 아직 듣지도 못했는데, 내 몸은 그의 발톱에 어느새 찢겨져 있는 것이다. 으아. 눈을 감고 있으면, 소리짱이 다가오는 걸 전혀 파악할 수가 없다. 나는 시각이 없는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는 감각을 갖지 못한, 소리적으로 열등한 존재이다.
4: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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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부딪히는 것을 조금 신경쓰기 시작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여기에는 몇번의 사건들이 계기가 되었을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탈리아에 여행 가서 사왔던 예쁜 찻잔이 테이블위에 있었는데, 소리짱이 테이블 위로 돌아다니다가, 부딪혀서 떨어뜨려서 산산조각이 난 적이 있었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소리짱 정말 밉다고 나무랐다. 고래고래고래고래. 그런다음에는, 삼각형 네모가 그려진 또 다른 찻잔을 비슷한 방식으로 깨서 잃어버리게 되었는데, 애초에 테이블에서 떨어지기 쉽게 놓여져있던 것도 잘못이었지만, 나는 잘 탓하는 사람이었다. 너 때문이야. 너가 책임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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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고양이는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별로 다치지 않는다고 하지만, 눈이 안보이는 고양이는 예외다. 눈이 안보이기 때문에, 땅에 닿는 순간, 고양이 특유의 고양이 낙법을 시전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리짱도 어릴때, 내 어깨에서 무작정 바닥으로 뛰어내린적이 있었는데, 그 때의 모습이 마치 날다람쥐 처럼 네 다리를 활짝 펴고, 충격에 대비하는 모습으로 뛰어내렸고, 결국은 바닥에 속수무책으로 부딪히면서 턱을 찧는 것을 보았었다.
아무튼, 그러고 나서 한동안은 소리짱도 밖에 나가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상처가 다 나아가자, 어김없이 또, '문을 열어라!', '지금 당장 밖에 나가야겠다!' 호통을 치기 시작해서, 집사의 철저한 동행을 전제로 산책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했다. 전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자유롭게 보낸다던가, 이런것은 더이상 없고, 산책에 동행하는 우리들도 한시간이고 마냥 옥상에 앉아있어 줄 수는 없기 때문에, 간단하게 바람을 즐기고, 새들과 담소는 할 시간이 없이, 서둘러 들어와야 하게 되었다.
4: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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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짱과 나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이 있다. 그건, 녀석이 기여한 부분도 있고, 내가 기여한 부분도 있다. 어쨌든, 우리가 그런 상황을 함께 만들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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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집사라는 프레임에서는 귀여운 고양이가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오직 집사의 잘못으로만 몰아가려는 경향이 있다. 고양이는 지능 발달이 인간으로 치면, 두 살 반에서 멈춘다고 한다. 처음으로 찾아갔던 동물 병원의 원장 선생님은 소리짱을 '아가'라고 부르셨다. 그리고, 나는 그 아가의 보호자였다. 고양이든 강아지든 반려동물로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고 하면, 그 문제는 일방적으로 우리 인간들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본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어딘가 좀 불만스러운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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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였나, 아파트에서 살던 나는 집에 혼자 있다가 부모님에 대한 분노에 크게 사로잡힌 적이 있다. 아니, 그게, 시작부터 화를 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지금 기억하고 있는 사건은 이런 것이다. 나는 뭔가 초조하거나, 기분이 상한 부분이 있었는데, 부모랑 있었던 어떤 사건에 대해서, 그것을 되새겨 가면서 혼자, 생각에 잠겨 있는 중이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안방에 6칸 짜리 목재 서랍장을 한 서랍씩 열어재꼈다가 다시 밀어넣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바퀴가 달린 고급서랍장은 미끄러지면서 열리고, 마지막까지 열리면, 멈춤 턱에 걸리면서, 탁-하고 멈추고, 마찬가지로 밀어 넣었을때도 부드럽게 미끄러져 들어가서 큼-하고 닫히는 그런 서랍장이었는데, 아까 있었던 그 일을 떠올리면서, '그 불합리한 사건', 하고 서랍을 열고, '그 부당한 언사', 하고 서랍을 닫고, '그 부당한 체벌', 하고 서랍을 열고, '그 부당한 표정!', '그 부당한 언사!', '그 부당한 체벌!' ... 이런 식으로 트라우마에 몰입하면서, 화를 증폭하면서, 점점 서랍을 여는 힘이 더 커지더니, 마침내는 서랍이 뜯어져 나오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고급서랍장이라고 해봤자, 겉보기만 그런 것이지, 결국은 타카심으로 대충 조립된 서랍이어서 충격을 받자 타카심들이 숭숭 전부다 빠져버린 것이다.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지만, 오히려 극단적으로 냉정해진 나는 즉시 신발장에서 망치를 가져다가, 빠진 타카심들의 위치를 맞춰가며 조심스럽게 다시 살살 박아 넣으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콩-콩-.' 하지만, 그렇게 쉽게 고쳐질 일이 아니다. 아-씨. 짜증이 난다. 이것은 내가 알기로는 엄마 아빠의 혼수로 구입한 장롱과 서랍장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짜증이 더 난다.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지? 하는 생각이 울컥하고 밀려온다. 망치를 두드리는 힘을 조절을 못하게 된다. 울화통이 터진다. 왜 안되니, 왜! 하면서, 서랍을 패기 시작했고, 지쳐 나자빠질 때까지, 그렇게 화를 터뜨린다. 손이 얼얼해져서 망치를 놓고, 바닥에 주저앉았을때는, 결국 서랍은 망치질 자국으로 흉칙하게 뒤덥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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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 서랍장은 부모님 댁에 있으나, 부모님은 그 서랍장이 왜 그렇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 단 한번도 언급도 하지 않으셨다. 당시에는, 이제 크게 혼이 나겠구나, 각오를 했었고, 이런 일을 저지른 나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렇게 된 참에 지금까지 말 못한 억울한 것들을 말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그건 더욱 속상했다. '모를 수는 없는데...' 누가봐도 명백하게 '박살'이 났는데, 게다가, 그 일을 저지를 사람은 오직 나 밖에 없는데, 왜, 적어도 '너가 그랬나?' '왜 그랬나?' '어쩌다 그랬나?' '뭐가 그렇게 화가 났나?' 이런 이야기, 왜 걸어주지 않는 걸까? 난 또 지금 이렇게 묵살당하는 것일까. 분개했었다. 그리고, 분을 삭히면서, 나도 그것에 대해서 다시는 말하지 않아야겠다로 결심한다. 우리 사이의 골은 그렇게 한번 더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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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가 서로에게 남남이라고 생각해보면, 합리적으로 따져본다면, 왜 내가 먼저 그것에 대해서 말을 꺼내지 않았는가? 하는 질문이 남기는 한다. 애초에 내가 화가 난 것은, 그들의 잘못이었고, 내가 그들에게 입힌 피해에 대해서도 오히려 그것을 지적해 주지 않은 그들이 잘못이다, 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너무나 왜곡된 소리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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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약자의 트라우마라는 것이 있다. 이 두가지의 폭력은 동등한 선 상에서 논의될 수가 없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부모에게 받은 폭력이나 억압은 그것이 저항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즉, 일방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사과를 받지 못하면, 좀처럼 그 트라우마에서는 빠져나오기 어렵다. 그러니까, 그 상황속에 사로 잡혀있는 사람이, 다시금 대등한 존재가 되어서, 이전의 사건을 담담하게 사과하고, 그 전의 사건에 대해서, 담담하게 해명을 요구한다거나 이런 일을 벌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야,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어느정도 나의 존재가 확고해져서, 이쪽에서 먼저 사과할 수도 있는 것은 아니겠느냐는 둥 하는 소리를 할 수도 있게 된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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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연쇄되는 것이라는 이야기. 그것을 어떻게 좀 해야 한다. 폭력은 연쇄되는 것이 아니다. 혹은, 아니어야 한다. 공격에는 방어가 있다. 방어를 하지 못하면 더 큰 피해를 입는다. 그렇지만, '공격과 방어', '폭력과 정당방위', 그리고, '폭력과 보복' 은 다들 섬세하게 구분되어야 하는 쌍이다.
공격을 방어해서, 피해를 최소화했다거나, 방어를 할 수 없어서,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렸다거나. 그런것은 애초에 폭력을 가한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말해 주지 않는다. 정당방위란 폭력에 대한 방어와 자기 보존을 위해 취한 행위가 상대방을 향한 반격의 형식을 취하게 되었을 때를 말한다면, 역시 애초에 폭력의 존재에 대해서 이것이 말하는 것은 없다. 요컨대, 폭력은 하나의 '의지'이자, 고유한 '선택'이다. 따라서, '보복'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또 다른 폭력이 존재할 뿐이다. 혹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이 굴레를 벗어나갈 선택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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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짱과 나 사이에 있는 팽팽한 긴장감이란 것도 아마 그런 것이다. 그땐 그랬었다. 나는 소리짱을 이해할 수가 없었고, 소리짱도 마찬가지였다.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어서, 내 손과 팔을 피가 나도록 물어 뜯었다. 물고, 또 물고 계속 물면서, 더 화가 나고, 더 억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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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의사 선생님한테 소리짱이 너무 물어서 힘들어요. 그리고, 그게 같이 사는 원정씨 손은 안물고요, 저의 손만 골라서 물어요. 인터넷에서 찾아보니까, 손으로 놀아줘서 그렇다고는 하던데, 그것은 제가 잘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되나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명언을 하셨는데, '소리짱한테, 밑 보였나봐요.' 라고 하시면서, 웃어넘기기만 하셨다. 아, 그러니까, 서열에서 자기보다 밑에 서열인 존재로 파악한 듯하다고. '네?...' 뭐라고 해야 할지,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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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럴 수도 있다. 원정씨를 향해서는 어떤 존경의 태도를 보여주는 편인데, 나한테는 뭔가 자신이 우위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자꾸 물리는 것 때문에, 나는 사실 소리짱이랑 더이상 같이 살 수가 없을 정도가 되어가고 있었다. 화가 너무 나기 시작했다. 물 때, 목 뒷덜미를 잡아서, 떼어서 바닥에 내려놓아주는데, 목을 내가 풀어주자 마자, 다시 달려들어서, 하이에나 처럼 물어뜯는다. 그러면, 어느 순간 분노조절장애에 걸린 나는 소리짱을 들어서 바닥에 집어 던져 버린다. 그러면, 소리짱은 나에게 당한 폭력을 기억하게 되어서, 다음번에 물기 시작했을 때는, 다시 그 기억에 사로잡힌 듯이 더 가혹하게 나를 물어 뜯게 되고는 한다. '절대로 반격하지 말 것.' 이라는 주의를 블로거 선생님들로 부터 받는다. 나는 이렇게나 억울한데, 반격을 하면 안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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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왜 그렇게나 물었을까. 이유는 있었을 것 같다. 처음하는 집사가 지식도, 성실함도 그럭저럭이다보니, 무언가 소리짱을 화나게 하는 실수를 했을 법도 하다. 그런게 한둘은 아니겠지. 다만, 소리짱은 그것을 나에게 제대로 알리는데 실패하게 되고, 가슴속에 불만을 쌓고 있다가. 기분 좋게 내 옆에 행복하게 앉아, 그릉그릉하다가, 쓰다듬어주는 내 손을 살짝 물었는데, 갑자기 쌓였던 불만이 폭발하면서 분노에 사로잡힌다거나 해서, 이성을 잃고, 오로지 물어 뜯는 것 밖에는 생각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거나. 뭔가 그런 사정이 있었을테지. 마치, 내가 서랍장을 열고 닫다가 정신줄을 놓고, 서랍장을 때려 부셨던 것 처럼. 나는 웬지 두가지 사건이 닮아있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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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리짱에서 폭력을 쏟아내는 모습을 보고, 원정씨는 맹 비난을 했다. 나는 폭력적인 인간으로서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 때부터, 나는 일종의 격리에 들어갔다. 나는 소리짱이 다가오면 완전히 도망을 가기로 했다. 서로 모르는 고양이, 모르는 사람이 되자. 절대로 만지거나 몸이 닿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자, 소리짱은 원정씨에게만 갈 수 있었고, 관계할 수 있게 되었다. 원래, 소리짱은 원정씨와는 다소 격이 있는 관계를 즐기는 편이고, 나와는 격식없이 감정을 쏟아내는 관계를 해왔었다. 긍정적인 감정도 많이 쏟아내곤 했었다. 이제, 내가 없어지니까 머지 않아, 원정씨한테도 감정을 쏟아 놓으면서 무는 일도 생기게 되었다. 아직, 나를 물던 것 처럼 세게 무는 것은 아니지만, 소리짱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물지 않게 하고, 물려고 할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배우고, 그것들을 하면서 소리짱을 가르쳐 보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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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짱과의 관계는 대충 몇번의 계기를 거치면서, 달라져온 것 같다. 최초에는 '친구'였다. 나는 친구, 소리짱이 너무 좋고, 나는 좋은 친구가 되고 싶었다. 두번째는, '동물'이었다. 나는 친구가 될 수가 없다. 너는 말 못하는 동물이고, 자신의 욕구 밖에는 모르는 존재이고, 나는 그런 존재와의 관계를 바라지 않는다. 폭력이 오가는 시기가 이 시기에 걸쳐있었다. 세번째는, '단절'이다. 그리고, 나는 내 자신의 폭력성에 대해서 재고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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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은 소리짱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기도 하다. 소리짱은 이제 원정씨한테도 물지 말것을 강하게 주의를 받게 되었고, 나는 내심, '거봐라, 소리짱. 쌤통.' 이렇게 생각했지만, 결국은 소리짱의 입지가 없어져서, 안타까왔다. 이제 '존경하는' 원정씨한테도 주의를 받고, 혼나니까, 속상하겠구나. 소리짱도 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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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짱과 나 사이에는 남들은 잘 모르는 팽팽한 긴장이 있다. 그건 마치, 내가 부모님댁에 한달에 두어번씩 찾아갈 때, 미세하게 떨리는 긴장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아직 용서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나이가 팔십을 넘었고, 소리짱도 이제 네살반이다. 나는 더 늦기 전에, 이 팽팽한 긴장을 조금이라도 해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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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육개월은 계속 소리짱을 피해다녔던 것 같다. 소리짱은 귀엽기 때문에, '물지만 않으면!', 폭력의 기억이 조금 멀어지자, 어느 순간 다시 소리짱을 쓰담쓰담하기 시작했다. 소리짱도 조금은 어른스러워졌다. 다만, 아무것도 해결이 안됐는데, 우리는 그냥 이 모든 폭력들을 다시 묻어 버리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안타까운 우리의 가족사와 같이.
한 육개월은 계속 소리짱을 피해다녔던 것 같다. 소리짱은 귀엽기 때문에, '물지만 않으면!', 폭력의 기억이 조금 멀어지자, 어느 순간 다시 소리짱을 쓰담쓰담하기 시작했다. 소리짱도 조금은 어른스러워졌다. 다만, 아무것도 해결이 안됐는데, 우리는 그냥 이 모든 폭력들을 다시 묻어 버리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안타까운 우리의 가족사와 같이.
'소리짱, 미안하다.' 말로는 사과하긴 했다만, 말이 안통하는 소리짱에게 말로 사과한다는 게 어떤 의미일지는 모르겠어서, 허공에 던지는 것 같이 내 목소리는 던져지고 있었고, 소리짱은 무슨 일이있었다는 건지, 도대체 모르겠고, 아랑곳하지 않는다면서, 오랜만에 내 무릎에 자기 얼굴을 비벼대며 좋아하고만 있었다.
5: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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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짱이 먼저 시작한 것 같기는 하다. 한 두살 조금 지날때쯤이었을까? 어느날 문득 소리짱이 냐-옹, 냐-옹을 조금 이렇게 저렇게 연습하는 듯하더니, 뭔가 사람이 말을 하는 것 처럼 들린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아... 지금 이거는 뭔가, 우리한테 말하는 것 같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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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목조목 따질때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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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그냥 수다쟁이의 수다를 떠는 것 같기도 하다. 특별히, 뭘 어떻게 해달라는 건 아니지만, 이야기하는데 재미라도 붙였는지, 자꾸 뭐라뭐라 하네.
그러면, 나도 나름의 대답을 한다. 환청으로 들린 이야기에 대답을 하는 것이다.
사실은 그냥 수다쟁이의 수다를 떠는 것 같기도 하다. 특별히, 뭘 어떻게 해달라는 건 아니지만, 이야기하는데 재미라도 붙였는지, 자꾸 뭐라뭐라 하네. 그러면, 나도 나름의 대답을 한다. 환청으로 들린 이야기에 대답을 하는 것이다.
"밥, 그래, 그거 쫌 있다가 준다. 집에 와서 바로 밥 주면, 백발백중 허겁지겁 먹다가, 토하니까. 니가 밥 생각 고만두면, 그때 주지."
@ -263,7 +245,7 @@
"그니까, 캣타워 알아보고 있기는 한데, 너무 비싸가지고, 하나 만들까? 하다가, 이 모양이네. 원정씨가 만들어 준다고 했으니까 기달려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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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냥 내용없이 대답이 가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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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한번 대답해주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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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감정이란 것이 들리니까, 감정만 담아서 대답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 머리를 쓰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대답이 가능하다. 무한정 수다를 떠는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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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짱이랑 함께 지내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일단, 내가 동물이라는 것이다. 인간이기 이전에, 혹은 인간이면서, 혹은 인간이라는 사실이 말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내가 소리짱과 같은 동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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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를 유투브 보고, 좀 따라해보고 있는데, 다운-독, 이란 자세가 있다. 처음엔, 솔직히 조금 부끄러웠달까, 아래로 향하는 개의 자세라는 것을 한다는 것이. 그런데, 유투브 동영상을 틀어놓고, '다운-독!' 이라는 선생님의 외침에 '발바닥, 아래로, 꾹!' 이라는 선생님의 단호한 라임에 부들부들 따라하는 나를 무슨 테레비 보듯이 바라보는 것을 소리짱은 꽤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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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개랑 같다는 점에 있어서, 부끄럽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럼 뭐였을까? 인간은 개보다 나은 존재, 우월하거나, 상위의 존재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사람에게 개라는 것은 많은 경우, 좋은 소리가 아니다. 개-새끼라고 한다거나, 개-같은-자식. 근데, 개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이제는 다운-독 자세가 부끄럽지는 않다. 다만, 부러울 뿐이다. '독'(dog)들이, 그리고 소리짱의 냥-스트레칭이. 생명체로서, 존경스럽다. 나도 노력하면, 너처럼 될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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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 위에서 녹아내리는 얼음처럼, 이라고 말했다. 어느, 산후조리운동 유투브에서 나온 표현이었다.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녹아내리는 얼음이라니, 내 허리가, 내 골반이 지금 이 매트리스 위에서 녹아 흘러 내리고 있다. 그것이 어찌나, 평화로운 장면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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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나는 아스팔트가 따뜻하다는 것을 감각하면서, 녹아내린다. 감각할 '정신'이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데, 왜 온기 만은 감각한다고 상정하고 있을까. 신기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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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짱,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