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ntent/pages/sori/index.txt’

This commit is contained in:
Dooho Yi 2020-05-28 18:49:25 +09:00
parent 981817b287
commit 5e58855a8c

View file

@ -295,11 +295,7 @@
\*
소리짱과의 관계는 대충 몇번의 계기를 거치면서, 달라져온 것 같다. 최초에는 '친구'였다. 나는 친구, 소리짱이 너무 좋고, 나는 좋은 친구가 되고 싶었다. 두번째는, '동물'이었다. 나는 친구가 될 수가 없다. 너는 말 못하는 동물이고, 자신의 욕구 밖에는 모르는 존재이고, 나는 그런 존재와의 관계로는 만족할 수 없는 인간이다. 폭력이 오가는 절정기가 이 두 시기의 사이에 있었다. 세번째는, '단절'이다. 그래서 나는 너와 단절되려고 한다.
\*
일단, '단절'의 단계에서 나는 내 자신의 폭력성에 대해서 재고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소리짱과의 관계는 대충 몇번의 계기를 거치면서, 달라져온 것 같다. 최초에는 '친구'였다. 나는 친구, 소리짱이 너무 좋고, 나는 좋은 친구가 되고 싶었다. 두번째는, '동물'이었다. 나는 친구가 될 수가 없다. 너는 말 못하는 동물이고, 자신의 욕구 밖에는 모르는 존재이고, 나는 그런 존재와의 관계를 바라지 않는다. 폭력이 오가는 시기가 이 시기에 걸쳐있었다. 세번째는, '단절'이다. 그리고, 나는 내 자신의 폭력성에 대해서 재고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
@ -307,12 +303,12 @@
\*
감정을 표현하는 다른 방법을 찾았는데, 그것은 일종의 '말'과 같은 것이었다. 어느날 부터 인가 소리짱이 소리를 내기 시작했는데, 우리들의 대화를 듣고 배웠는지, 문득 들으면, 사람이 말하는 것 처럼, 무언가 감정이나 의사가 막연하게 느껴지는 그런 소리들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무는 것은 여전했지만, 물다가 주의를 받으면, 거리를 두고 앉아서, 그 속상함을 뭔가 불만스럽게 칭얼대는 소리로서 표현하게 된 것이다.
소리짱과 나 사이에는 남들은 잘 모르는 팽팽한 긴장이 있다. 그건 마치, 내가 부모님댁에 한달에 두어번씩 찾아갈 때, 미세하게 떨리는 긴장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아직 용서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나이가 팔십을 넘었고, 소리짱도 이제 네살반이다. 나는 더 늦기 전에, 이 팽팽한 긴장을 조금이라도 해명할 수 있을까.
\*
소리짱과 나는 서로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 물론, 오해하는 부분도 많고, 소리짱이 살아가는 환경은 대체로 내가 유지관리하는 공간이고, 소리짱은 이 공간을 관리하는 법을 모르거나, 다르게 관리할 것이다. 다만, 두가지의 종(species)이 각자의 방식대로 공간을 관리했을때, 어떤 타협점이 만들어져야할텐데, 그런 조율을 하는데 있어서, 훨씬 유연하게 행동할 수 있는 존재가 나이기 때문에, 내가 소리짱의 의견까지 종합해서 관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소리짱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 문제의 원인이 되긴하지만, 애초에 그것은 내가 원해서 취한 입장이 아니다. 다만, 소리짱도 본인이 원해서, 이 집에 들어오게 된 것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이것은 내가 원했던 입장이라고 봐야 하는 것인가? 하는 도돌이표가 붙게 된다. 즉, 최초의 폭력은 소리짱에게 이 집에서 살아가라고 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폭력적이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소리짱을 위한 선택이라는 포장지가 발려져있기는 하다. 문래동 기계공업단지에 엄마 고양이도 없이, 소리짱을 되돌려 보낼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소리짱의 안전과 건강과 행복이-즉, 삶의 의미가 파괴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판단일 뿐이지만.
한 육개월은 계속 소리짱을 피해다녔던 것 같다. 소리짱은 귀엽기 때문에, '물지만 않으면!', 폭력의 기억이 조금 멀어지자, 어느 순간 다시 소리짱을 쓰담쓰담하기 시작했다. 소리짱도 조금은 어른스러워졌다. 다만, 아무것도 해결이 안됐는데, 우리는 그냥 이 모든 폭력들을 다시 묻어 버리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안타까운 우리의 가족사와 같이.
'소리짱, 미안하다.' 말로는 사과하긴 했다만, 말이 안통하는 소리짱에게 말로 사과한다는 게 어떤 의미일지는 모르겠어서, 허공에 던지는 것 같이 내 목소리는 던져지고 있었고, 소리짱은 무슨 일이있었다는 건지, 도대체 모르겠고, 아랑곳하지 않는다면서, 오랜만에 내 무릎에 자기 얼굴을 비벼대며 좋아하고만 있었다.
\*
그래서, 이것은 폭력으로 점철되어있기는 하지만, 그렇게만 볼 수 없기도 하다. 그렇다면, 뭐라고 해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