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ntent/pages/sori/index.rst’

This commit is contained in:
Dooho Yi 2020-05-23 02:11:49 +09:00
parent 99c2e81319
commit 7cb20b8874

View file

@ -75,11 +75,39 @@ sori
\*
집에 혼자 둘수가 없어서, 작업실에 함께 출퇴근을 했는데, 내가 자켓 속에 넣고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고양이가 놀라면, 길에서 갑자기 튀어나가게 되는데, 길거리에는 차가 다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가 있다고 한다. 우리는 소리짱이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소리짱과 우리 사이의 관계에는 아직 즐거움이란 없었다. 우리는 항상 소리짱을 괴롭히는 사람들이었다. 병원에 강제로 데려가고, 입원을 시키고, 수술을 시키고, 약을 먹이고, '사료'라는 이상한 음식을 먹으라고 하고, 화장실을 사용하라고 하고, 그러고 나면 피곤해서, 잠을 잤다.
몸이 회복되면서, 서서히 우리들도 소리짱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무언가를 시도해보기도 했다.
\*
집에 혼자 둘수가 없어서, 작업실에 함께 출퇴근을 했는데, 내가 즐겨 입던 초록색 자켓 속에 넣고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지금도 그 자켓은 기억하는 것 같다. 소리짱은 굳이 추운 겨울에도 항상 자켓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바깥 바람을 맞으려고 했다. 우리는 소리짱이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사선생님과 인터넷은 보통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게다가,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고양이가 놀라면, 길에서 갑자기 튀어나가게 되는데, 길거리에는 차가 다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가 있다고 한다.
'야, 자전거 태워주니까, 오백원 내라.'
즐거움이란 없었다. 우리는 항상 소리짱을 괴롭히는 사람들이었다. 관계 맺기를 본격적으로 시도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우리들은 소리짱처럼 눈이 없는 고양이인데도 산책하는 고양이의 냥스타그램 등을 발견하고, 소리짱도 산책냥이가 될 소질이 있다고 꿈을 꾸기 시작했다.
\*
시각이 없어도 거침이 없었다. 테이블의 높이 같은 것이 익숙해지자 뛰어오르기도 하고, 뛰어내리기도 했다. 그치만, 테이블위가 항상 잘 치워져있지 않다보니, 소리짱은 생각도 못한 장애물이 갑자기 출현하는 상황을 몇번마주하게 된다. 눈이 없는 소리짱은 특히나 어릴때는 젊은 혈기(?)로 많이 부딪히고 다녔다. 어지간히 조금 부딪히거나 채이는 것은 그냥 신경쓰지 않을 만큼, 세상은 흥미로운 것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테이블이 정리되어 있지 않았던 것은 많이 실망했는지, 곧 뛰어 오르는 일은 그만두게 되었다. 소리짱, 그래도 우린 기억하고 있어. 너가 책상에도 무릎에도 뛰어올라 오곤 했었다는 걸.
\*
눈이 안보여도, 소리짱은 사냥을 할 수 있었다. 요점은 고양이 스텝이다. 사뿐사뿐. 그리고, 존재를 숨긴다. 잠자리, 파리 이런것들이 나타나면, 곧잘 잡아오거나, 침을 발라서, 꼼짝못하게 만든 파리를 갖고 놀다가 버리고 간다거나. 하여튼, 거침이 없었다. 소리짱은 뒷일은 잘 생각하지 않는 편이라서, 옥탑방에 살 때, 바깥에 놓인 높은 사다리를 올라가서는 못 내려와서 울고 불고 난리 부리기도 했다. 지금도 옥탑에서 뛰어 놀았던 기억은 소중히 간직하고 있겠지. 다음엔 마당있는 집에 가서 산책냥이 도전해보자구.
\*
나이가 들면서, 부딪히는 것을 조금 신경쓰기 시작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여기에는 몇번의 사건들이 계기가 되었을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탈리아에 여행 가서 사왔던 예쁜 찻잔이 테이블위에 있었는데, 소리짱이 테이블 위로 돌아다니다가, 밀어서 떨어뜨려서 깨뜨린 적이 있었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소리짱 정말 밉다고 나무랐다. 고래고래고래고래. 그런다음에는, 삼각형 네모가 그려진 또 다른 찻잔을 비슷한 방식으로 깨서 잃어버리게 되었는데, 애초에 테이블에서 떨어지기 쉽게 놓여져있던 것도 잘못이었지만, 나는 잘 탓하는 사람이었다. 너 때문이야. 너가 책임쳐.
\*
그러다보니 그랬을까, 소리짱이 좀 위축된 걸까. 지금도 생각하면 속상하지만, 뭐 이미 벌어진 일을 어쩌겠나. 누구라도 탓하고 싶은 심정인 내 자신의 우울이 소리짱에게 씌워진 상황과 같은 것이다. 누구라도 탓하지 않으면, 누구라도 희생시키지 않으면 안될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내 안에 배긴, 어떤 자국, 어떤 상흔이 지금도 아주 다 낫지 못했다는 것을 계속해서 확인하게 된다.
\*
| 오늘의 검은화면은 무언가, 뿌옇고, 흐리다. 모든 것들이 차분하게 내려앉아 있는가? 소리들이 눈을 잘 감고 있는가. 분자들이 잘, 숨쉬고 있는가. 열쇠가, 전구가, 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