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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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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2, 17:03: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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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사는 고양이의 이름은 '소리'라고 한다. '소리야' 하고 부르는 일은 평생 거의 없고, 대부분, '소리-짱' 이라고, 짱즈케를 한다. '소리-이', '소리-야' 하고 부르려고 했을 때도, 있기는 했었다, 이름 지은 지 얼마 안됐었을때는. 왜 그런지는 몰라도, 자꾸 첫음절에 강세가 붙다보면, '소리'가 '쏘리'가 되곤 했는데, 영어로 미안하다, 유감이다가 연상되는 바람에, 기피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언젠가, 이름을 바꿔야겠어.' 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이미, 동물병원에 갔을때, 그렇게 정해졌기도 하고, 막상 우리들도 '소리'라는 이름이 입에 붙어버려서, 다른 것이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또, 소리-짱도, 그다지 상관하는 것 같지 않았고, 그 '소리'가 인간들의 언어로 무슨 의미를 가지던 상관없는 것 같았고, 그래야만 하는 것이라고 내심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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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짱을 만난 것은, 2016년 10월 어느날, 문래동 기계공장들이 많은 골목의 어느 한켠, 창고를 작업실로 쓰고 있었던 시절의 일이었다. 겨울이 오려는가 봐. 제법 쌀쌀하다. 작업실에는 화목난로가 있었고, 장작을 두어개 태우면서, 온기를 가늠하고 있었다. 작업실로 사용하던 창고는 큰 길가에 나온 점포들의 안쪽에 있었기 때문에, 점포들의 사잇길로 한 번 들어오는 좁은 골목길을 지나서 들어오게 되어있었다. 이 좁은 골목길에는 작업실 공간 외에도, 사람 사는 집들도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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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아마도 어딘가에 가볍게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는가 보다. 흐린 날씨에 늦은 오후 햇살이 골목길에 내려앉는 것을 거절하듯이, 어떤 작은 생명체가 비명에 가까운 울음을 내뿜고 있었다. 손바닥만한 작은 고양이가 텅 빈 골목길을 향해서, 텅 빈 하늘을 향해서, 찢어지는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우리는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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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너 괜찮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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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작은 고양이는 얼굴이 망가져있었다. 우리가 있는 것을 알기는 하는 것 같은데, 대답이나, 태도에 변화가 없다. 아니, 어쩌면, 우리를 향해서, 고함을 치기 시작한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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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떨어져서 다쳤나봐.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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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네, 일단 작업실에 들어가자. 엄마 고양이가 올 수도 있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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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몸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골목이 쩌렁쩌렁하게 울려서, 누가 와도 벌써 왔어야 할 것 같은데, 엄마 고양이는 다른 사정이 있는지 나타나지 않고, 따듯한 작업실에 앉아서,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우리들도 안절부절이었다. 나는 계속 망설이고 있었던 편이었는데, 원정씨는 참다 못했는지, 셔터 문을 열고, 다시 골목길로 나가서 소리나는 쪽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다시 그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나도 뒤늦게 뒤를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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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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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는 그 말을 듣기도 전에 이미 마음을 정한 것만 같이, '나를 구해줘.' 아니, '나를 구하라!' 라고 명령하듯이 우리들에게 외치고 있었다. 우리들은 약간의 손짓과 몸짓을 써서, '나를 따라와' 라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자, 그 생명체는 작은 몸뚱아리에 붙어있는 곧 부러질 것 같은 네개의 다리를 바닥에 거칠게 내동댕이 치면서,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집요하고 단호한 걸음을 딛어 가면서, 우리의 뒤를 따라 들어왔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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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에 들어와서도 광기는 금방 가라앉지 않았다. 쌩쌩불던 바람은 피하는데 성공했지만, 돌바닥이 차다. 뭔가 따뜻한 담요 같은 것을 차가운 돌바닥에 깔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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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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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가 남아있는 화목난로 옆에 자리를 마련했다. 담요는 일단 사양하는 것 같았지만, 화목난로는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난로의 온기가 머무는 공간에 한 켠에 병든 병아리처럼, 엉거주춤하게 멈춰서서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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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서야, 마침내, 정적이 찾아왔다. 세상도 한숨을 내리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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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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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검은화면은 무언가, 뿌옇고, 흐리다. 모든 것들이 차분하게 내려앉아 있는가? 소리들이 눈을 잘 감고 있는가. 분자들이 잘, 숨쉬고 있는가. 열쇠가, 전구가, 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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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지가, 물속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파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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