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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oho Yi 2020-05-25 21:25:3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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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짱과 우리 사이의 관계는 아직 시작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항상 소리짱을 괴롭히는 사람들이었다. 병원에 강제로 데려가고, 입원을 시키고, 수술을 시키고, 약을 먹이고, '사료'라는 이상한 음식을 먹으라고 하고, 화장실을 사용하라고 하고, 그러고 나면 피곤해져서, 다 같이 잠을 잤다. 일단은, 어서 건강해지기를.
하지만, 소리짱은 한없이 우울해보였다. 엄마한테 버림 받고, 형제들이랑 떨어져서, 고생도 많이해서 그런지, 하루 종일 잠만 자는 녀석의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우울은 절망에 가까운 것이었다. 참다 못한, 우리들은 뭐라도 좋으니, 말을 걸어보기로 한다.
하지만, 소리짱은 한없이 우울해보였다. 엄마한테 버림 받고, 형제들이랑 떨어져서, 고생도 많이해서 그런지, 하루 종일 잠만 자는 녀석의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우울은 절망에 가까운 것이었다. 살아 남기는 했는데, 무슨 낙으로 살아야 할지 막막해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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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감각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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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혼자 둘수가 없어서, 작업실에 함께 출퇴근을 했는데, 내가 즐겨 입던 초록색 자켓 속에 넣고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지금도 그 자켓은 기억하는 것 같다. 소리짱은 굳이 추운 겨울에도 항상 자켓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바깥 바람을 맞으려고 했다. 우리는 소리짱이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사선생님과 인터넷은 보통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게다가,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고양이가 놀라면, 길에서 갑자기 튀어나가게 되는데, 길거리에는 차가 다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가 있다고 한다.
아직 돌봄이 필요한데, 집에 혼자 둘수가 없어서, 작업실로 함께 출퇴근을 했다. 처음에는 이동장에 넣어서, 자전거 뒤에 싣고, 이동했었는데, 엄청나게 울고, 이동장 안에 쉬도 하고, 뭔가 스트레스가 엄청난 것 같았다. 한번은 이동장에 안들어가려고 하면서 내 몸에 찰싹 들러붙길래, 그대로 내가 즐겨 입던 초록색 솜잠바 속에 소리짱을 넣고 자크를 올리고 자전거를 탔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12월이었다. 지금도 소리짱이 그 자켓은 기억하는 것 같다. 원래는 고양이를 데리고 외부에서 이동할 때는 고양이가 놀라면 찻길로 튀어 나가기 때문에, 반드시 이동장에 넣거나, 몸줄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몸줄 같은 게 없기도 했고 소리짱은 피부에 최대한 가깝게 붙어서, 심장소리나, 온기를 느끼지 않으면, 안심이 안되는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더 안전해보자고, 잠바의 자크를 꽉 올려서 채우려고 하면, 소리짱은 저항하면서 자켓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바깥 바람을 맞겠다고 했다. 우리는 소리짱이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야, 자전거 태워주니까, 오백원 내라.'
어쨌든, 우리들은 소리짱처럼 눈이 없는 고양이인데도 산책하는 고양이의 냥스타그램 등을 발견하고, 소리짱도 산책냥이가 될 소질이 있다고 꿈을 꾸기 시작했다.
어쨌든, 우리들은 소리짱처럼 눈이 없는 고양이인데도 산속에서 산책하는 고양이의 냥스타그램 등을 발견하고, 소리짱도 산책냥이가 될 소질이 있다고 꿈을 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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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짱은 놀이를 잘하고 싶어서, 많은 노력을 한다. 내가 장난감을 이리저리 옮기다가, 멈추면, 마지막으로 소리가 난 위치를 주목해서 보고 있다. 공격하려고 자세를 잡기는 하는데, 자신감이 없어진다, 저기 쯤에 있는데, 소리짱은 내가 가는 순간 도망갈 거 같은데, 한번에 뛰어서 정확하게 저 지점을 사냥해야 하는 숙제속에서 갈등한다. 결국 조금이라도 자신이 없어지면, 다음 기회를 노린다. 아주 신중한 사냥꾼이다. 소리짱은 가까운 거리에서는 굉장히 정확하게 추적해오기 때문에, 장난감을 멈추고 있을 수가 없다. 나는 시각이 있기 때문에, 소리짱의 공격이 느리게 느껴진다. 소리짱은 시각이 없다라는 핸디캡을 가지고, 나와 경쟁하기 때문에, 어느 순간 재미가 없어지기도 한다. 그럴때는, 나도 눈을 감고 게임에 참여하는 것도 좋다. 눈을 감으면, 우리는 동등해진다. 나는 장난감을 흔들다가 바닥에 내려놓는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포식자 앞에 놓인 어떤 작은 벌레의 심정을 떠올린다. 하늘에서 독수리처럼 나꿔채가는 그 포식자가 다가오는 소리를 나는 아직 듣지 못했는데, 내 몸은 그의 발톱에 어느새 찢겨져 있는 것이다. 으아. 눈을 감고 있으면, 소리짱이 다가오는 걸 전혀 파악할 수가 없다. 나는 소리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는 감각을 갖지 못한, 소리적으로 열등한 존재이다.
몇몇 삼촌, 이모들이 주고 간 사랑의 장난감들이 있었다. 고양이 장난감은 반짝이는 셀로판지나 화려한 깃털 이런것들이 달린 막대기들이 있는데, 소리짱은 눈이 안보이기 때문에, 그런 장난감들은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특별하게 방울이나 사기 조각 같은 소리나는 것들이 달린 장난감을 골랐다고 한다. 일단 소리가 나는 장난감을 소리짱도 더 관심을 보이는 것 같기는 했다.
모든 고양이들 놀이의 기본은 움직이다가 멈추는 것이고, 사물이 보이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인간 어린이 두 살도 같은 식으로 놀아주면 된다. 숨겼다가, 보여주기. 소리짱의 경우에는 소리로 숨겨야 한다. 소리를 내다가 안내면 된다. 소리짱이 좋아하는 장난감은 그래서, 소리가 작은 장난감이다. 방울 이런거 달린것도 좋아하지만, 어느정도 하고 나면, 그런 것들은 금방 싫증이 난다. 소리가 너무 잘 들려서, 재미가 없는 것 같다. 그냥 막대기 끝네 작은 털뭉치가 달린 장난감이 있는데, 원래는 물고 빠는 장난감이지만, 이걸로 장판 바닥을 긁어주면, 사-악 사-악 하는 작은 소리가 난다. 여기까지는 사람귀에 들리지만, 그런 다음에 그냥 제자리에서 천천히 회전을 시킨다. 그러면, 우리는 듣지 못하는 더 작은 사-악 소리가 나겠지. 소리짱은 이 소리를 아주 흥미롭게 듣는다. 분명히 소리가 작다는 것은 소리짱에게는 존재자체가 작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주 작은 벌레. 파리가 앉아서 손바닥을 비비는 소리 같은 것은 자신보다 약자라는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지도 모른다. 만만하게 보인다. 그러면, 사냥하기 위해, 아주 사뿐사뿐 걸어온다. 암살자. 잠자리도 파리도 소리짱이 다가오는 걸 잘 파악하지 못한다. 눈이 없었다면, 나도 분명히 파악할 수 없었겠지.
놀이 시간을 조금씩 가지면서, 발견한 점은 소리짱에게는 소리의 크기가 곧 존재의 크기라는 점이었다.
손으로 놀아주기. 소리로 놀아주기. 소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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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부딪히는 것을 조금 신경쓰기 시작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여기에는 몇번의 사건들이 계기가 되었을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탈리아에 여행 가서 사왔던 예쁜 찻잔이 테이블위에 있었는데, 소리짱이 테이블 위로 돌아다니다가, 밀어서 떨어뜨려서 깨뜨린 적이 있었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소리짱 정말 밉다고 나무랐다. 고래고래고래고래. 그런다음에는, 삼각형 네모가 그려진 또 다른 찻잔을 비슷한 방식으로 깨서 잃어버리게 되었는데, 애초에 테이블에서 떨어지기 쉽게 놓여져있던 것도 잘못이었지만, 나는 잘 탓하는 사람이었다. 너 때문이야. 너가 책임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