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ntent/pages/sori/index.rst’
This commit is contained in:
parent
3574067afc
commit
c58cd5912b
1 changed files with 39 additions and 39 deletions
|
|
@ -1,45 +1,45 @@
|
|||
1:만남
|
||||
----------------
|
||||
|
||||
우리 집에 사는 고양이의 이름은 '소리'라고 한다. 하지만, '소리야' 하고 부르는 일은 평생 거의 없었고, 언제나 '소리-짱' 이라고, 짱즈케를 한다. 이름을 갓 지었을 때는, '소리-이!', '소리-야!' 하고 불러보기도 했었는데, 자꾸 첫음절에 강세가 붙어서, '소리'가 '쏘리'가 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면, 영어로 '미안해, 유감이다'라는 의미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그런 발음을 피하려고 하다보니, '소리짱'이 된 것도 있다.
|
||||
|
||||
'이름을 잘못지은 것 같아. 이름을 바꿔야겠어!'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동물병원에도 그렇게 등록했고, 주변 사람들도 다들 그렇게 알고 있어서, 사태가 커져버린 상황이었다. 막상 다른 이름을 생각해내서, 연습을 해보아도 '소리'라는 이름으로 돌아와버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실, 그런 의미론적인 생각들은 우리들의 머리속에서만 일어나는 것이지, 소리짱은 그다지 상관하는 것 같지 않았던 것도 한 몫했다.
|
||||
|
||||
'인간. 이름같은 건, 한번 정했으면, 끝이야. 뭘 또 왜 바꾸자는 거야, 독재 인간 정부 물러가랏!'
|
||||
|
||||
인간들이 자기 편하게 붙인 이름이 인간들의 언어로 무슨 의미를 가지던 그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소리짱'에게 '소리'라는 음향은 어떤 호출-소리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
||||
|
||||
\*
|
||||
|
||||
소리짱을 만난 것은, 2015년 10월 말, 문래동 기계공장들이 밀집된 지역에서, 어느 한켠에 있는 창고를 작업실로 쓰고 있었던 시절의 일이었다. 겨울이 오려는가 바람도 세차고, 제법 쌀쌀한 날이었다. 작업실에는 화목난로가 있었고, 장작을 두어개 태우면서, 온기를 가늠하고 있었다. 작업실로 사용하던 창고는 큰 길가에 나온 점포들의 뒤켠에 있었기 때문에, 점포들의 사잇길로 한 번 들어오는 좁은 골목길을 지나서 들어오게 되어있었다. 이 좁은 골목길에는 작업실 공간 외에, 사람들이 사는 집들도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
||||
|
||||
\*
|
||||
|
||||
우리들은 아마도 어딘가에 가볍게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는가 보다. 흐린 날씨에 늦은 오후 햇살이 골목길에 내려앉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어떤 작은 생명체가 비명에 가까운 울음을 내뿜고 있었다. 손바닥만한 작은 고양이가 텅 빈 골목길을 향해서, 텅 빈 하늘을 향해서, 찢어지는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우리는 말을 걸었다,
|
||||
|
||||
"안녕, 너 괜찮니?"
|
||||
|
||||
그 작은 고양이는 얼굴이 망가져있었다. 우리가 있는 것을 알기는 하는 것 같은데, 대답이나, 태도에 변화가 없다. 아니, 어쩌면, 우리를 향해서, 고함을 치기 시작한 것 같기도 하고.
|
||||
|
||||
"지붕 위에서 떨어져서 다쳤나봐. 어떡해."
|
||||
|
||||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네, 일단 작업실에 들어가자. 엄마 고양이가 올 수도 있고 하니."
|
||||
|
||||
작은 몸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골목이 쩌렁쩌렁하게 울려서, 누가 와도 벌써 왔어야 할 것 같은데, 엄마 고양이는 다른 사정이 있는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따듯한 작업실에 들어와 앉아서, 그 울음 소리를 듣고만 있자니, 우리들도 안절부절이었다. 나는 계속 망설이고 있었던 편이었는데, 원정씨는 참다 못했는지, 셔터 문을 열고, 다시 골목길로 나가서 소리나는 쪽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다시 그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나도 놓치지 않고 뒤를 밟았다.
|
||||
|
||||
"우리 작업실에 갈래?"
|
||||
|
||||
그 친구는 그 말을 듣기도 전에 이미 마음을 정한 것만 같이, '나를 구해줘.' 아니, '나를 구하라!' 라고 명령하듯이 우리들에게 외치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약간의 손짓과 몸짓을 써서, '우리를 따라와' 라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자, 그 생명체는 작은 몸뚱아리에 붙어있는 곧 부러질 것 같은 네 개의 다리를 바닥으로 거칠게 내동댕이치면서,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집요하고, 단호한 걸음을 딛어 가면서, 우리의 뒤를 따라 들어왔던 것이었다.
|
||||
|
||||
\*
|
||||
|
||||
작업실에 들어와서도 광기는 한동안 가라앉지 않았다. 쌩쌩불던 바람은 피하는데 성공했지만, 돌바닥이 차다. 뭔가 따뜻한 담요 같은 것을 차가운 돌바닥에 깔아주었다.
|
||||
|
||||
"이쪽으로 와 봐."
|
||||
|
||||
온기가 남아있는 화목난로 옆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지만, 담요는 거절당했다. 다만, 화목난로는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난로의 온기가 머무는 공간의 한 모서리에 병든 병아리처럼, 엉거주춤하게 멈춰서서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
||||
|
||||
그제서야, 마침내, 정적이 찾아왔다. 세상도 한숨을 내리쉬었다.
|
||||
| 우리 집에 사는 고양이의 이름은 '소리'라고 한다. 하지만, '소리야' 하고 부르는 일은 평생 거의 없었고, 언제나 '소리-짱' 이라고, 짱즈케를 한다. 이름을 갓 지었을 때는, '소리-이!', '소리-야!' 하고 불러보기도 했었는데, 자꾸 첫음절에 강세가 붙어서, '소리'가 '쏘리'가 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면, 영어로 '미안해, 유감이다'라는 의미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그런 발음을 피하려고 하다보니, '소리짱'이 된 것도 있다.
|
||||
|
|
||||
| '이름을 잘못지은 것 같아. 이름을 바꿔야겠어!'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동물병원에도 그렇게 등록했고, 주변 사람들도 다들 그렇게 알고 있어서, 사태가 커져버린 상황이었다. 막상 다른 이름을 생각해내서, 연습을 해보아도 '소리'라는 이름으로 돌아와버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실, 그런 의미론적인 생각들은 우리들의 머리속에서만 일어나는 것이지, 소리짱은 그다지 상관하는 것 같지 않았던 것도 한 몫했다.
|
||||
|
|
||||
| '인간. 이름같은 건, 한번 정했으면, 끝이야. 뭘 또 왜 바꾸자는 거야, 독재 인간 정부 물러가랏!'
|
||||
|
|
||||
| 인간들이 자기 편하게 붙인 이름이 인간들의 언어로 무슨 의미를 가지던 그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소리짱'에게 '소리'라는 음향은 어떤 호출-소리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
||||
|
|
||||
| \*
|
||||
|
|
||||
| 소리짱을 만난 것은, 2015년 10월 말, 문래동 기계공장들이 밀집된 지역에서, 어느 한켠에 있는 창고를 작업실로 쓰고 있었던 시절의 일이었다. 겨울이 오려는가 바람도 세차고, 제법 쌀쌀한 날이었다. 작업실에는 화목난로가 있었고, 장작을 두어개 태우면서, 온기를 가늠하고 있었다. 작업실로 사용하던 창고는 큰 길가에 나온 점포들의 뒤켠에 있었기 때문에, 점포들의 사잇길로 한 번 들어오는 좁은 골목길을 지나서 들어오게 되어있었다. 이 좁은 골목길에는 작업실 공간 외에, 사람들이 사는 집들도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
||||
|
|
||||
| \*
|
||||
|
|
||||
| 우리들은 아마도 어딘가에 가볍게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는가 보다. 흐린 날씨에 늦은 오후 햇살이 골목길에 내려앉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어떤 작은 생명체가 비명에 가까운 울음을 내뿜고 있었다. 손바닥만한 작은 고양이가 텅 빈 골목길을 향해서, 텅 빈 하늘을 향해서, 찢어지는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우리는 말을 걸었다,
|
||||
|
|
||||
| "안녕, 너 괜찮니?"
|
||||
|
|
||||
| 그 작은 고양이는 얼굴이 망가져있었다. 우리가 있는 것을 알기는 하는 것 같은데, 대답이나, 태도에 변화가 없다. 아니, 어쩌면, 우리를 향해서, 고함을 치기 시작한 것 같기도 하고.
|
||||
|
|
||||
| "지붕 위에서 떨어져서 다쳤나봐. 어떡해."
|
||||
|
|
||||
|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네, 일단 작업실에 들어가자. 엄마 고양이가 올 수도 있고 하니."
|
||||
|
|
||||
| 작은 몸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골목이 쩌렁쩌렁하게 울려서, 누가 와도 벌써 왔어야 할 것 같은데, 엄마 고양이는 다른 사정이 있는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따듯한 작업실에 들어와 앉아서, 그 울음 소리를 듣고만 있자니, 우리들도 안절부절이었다. 나는 계속 망설이고 있었던 편이었는데, 원정씨는 참다 못했는지, 셔터 문을 열고, 다시 골목길로 나가서 소리나는 쪽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다시 그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나도 놓치지 않고 뒤를 밟았다.
|
||||
|
|
||||
| "우리 작업실에 갈래?"
|
||||
|
|
||||
| 그 친구는 그 말을 듣기도 전에 이미 마음을 정한 것만 같이, '나를 구해줘.' 아니, '나를 구하라!' 라고 명령하듯이 우리들에게 외치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약간의 손짓과 몸짓을 써서, '우리를 따라와' 라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자, 그 생명체는 작은 몸뚱아리에 붙어있는 곧 부러질 것 같은 네 개의 다리를 바닥으로 거칠게 내동댕이치면서,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집요하고, 단호한 걸음을 딛어 가면서, 우리의 뒤를 따라 들어왔던 것이었다.
|
||||
|
|
||||
| \*
|
||||
|
|
||||
| 작업실에 들어와서도 광기는 한동안 가라앉지 않았다. 쌩쌩불던 바람은 피하는데 성공했지만, 돌바닥이 차다. 뭔가 따뜻한 담요 같은 것을 차가운 돌바닥에 깔아주었다.
|
||||
|
|
||||
| "이쪽으로 와 봐."
|
||||
|
|
||||
| 온기가 남아있는 화목난로 옆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지만, 담요는 거절당했다. 다만, 화목난로는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난로의 온기가 머무는 공간의 한 모서리에 병든 병아리처럼, 엉거주춤하게 멈춰서서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
||||
|
|
||||
| 그제서야, 마침내, 정적이 찾아왔다. 세상도 한숨을 내리쉬었다.
|
||||
|
||||
|
||||
2:시작
|
||||
|
|
|
|||
Loading…
Reference in a new iss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