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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였나, 아파트에서 살던 나는 집에 혼자 있다가 부모님에 대한 분노에 크게 사로잡힌 적이 있다. 너무 화가 났는데, 아니, 어쩌면, 처음에는 화가 난 것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지금 기억하고 있는 사건은 이런 것이다. 나는 뭔가 초조하거나, 기분이 상한 부분이 있었는데, 부모랑 있었던 어떤 사건에 대해서, 그것을 되새겨 가면서 혼자, 생각에 잠겨 있는 중이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안방에 6칸 짜리 목재 서랍장을 한 서랍씩 열어재꼈다가 다시 밀어넣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바퀴가 달린 고급서랍장은 미끄러지면서 열리고, 마지막까지 열리면, 멈춤 턱에 걸리면서, 탁-하고 멈추고, 마찬가지로 밀어 넣었을때도 부드럽게 미끄러져 들어가서 큼-하고 닫히는 그런 서랍장이었는데, 아까 있었던 그 일을 떠올리면서, '그 불합리한 사건', 하고 서랍을 열고, '그 부당한 언사', 하고 서랍을 닫고, '그 부당한 체벌', 하고 서랍을 열고, '그 부당한 표정!', '그 부당한 언사!', '그 부당한 체벌!' ... 이런 식으로 트라우마에 몰입하면서, 화를 증폭하면서, 점점 서랍을 여는 힘이 더 커지고, 마침내는 서랍이 뜯어져 나오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고급서랍장이라고 해봤자, 겉보기만 그런 것이지, 결국은 타카심으로 대충 조립된 서랍이어서 충격을 받자 타카심들이 숭숭 전부다 빠져버렸다.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지만, 오히려 극단적으로 냉정해져서, 즉시 신발장에 있는 망치를 가져다가, 콩-콩- 빠진 타카심을 조심스럽게 살살 박아 넣으려고 해보았다. 잘 안된다. 아-씨. 짜증이 난다. 이것은 내가 알기로는 엄마 아빠의 혼수로 구입한 장롱과 서랍장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짜증이 더 난다.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지? 하는 생각이 울컥하고 밀려온다. 망치를 두드리는 힘을 조절을 못하게 된다. 울화통이 터진다. 왜 안되니, 왜! 하면서, 서랍을 패기 시작했고, 지쳐 나자빠질 때까지, 그렇게 화를 터뜨린다. 손이 얼얼해져서 망치를 놓고, 바닥에 주저앉았을때는, 결국 서랍은 망치질 자국으로 흉칙하게 뒤덥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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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였나, 아파트에서 살던 나는 집에 혼자 있다가 부모님에 대한 분노에 크게 사로잡힌 적이 있다. 너무 화가 났는데, 아니, 어쩌면, 처음에는 화가 난 것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지금 기억하고 있는 사건은 이런 것이다. 나는 뭔가 초조하거나, 기분이 상한 부분이 있었는데, 부모랑 있었던 어떤 사건에 대해서, 그것을 되새겨 가면서 혼자, 생각에 잠겨 있는 중이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안방에 6칸 짜리 목재 서랍장을 한 서랍씩 열어재꼈다가 다시 밀어넣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바퀴가 달린 고급서랍장은 미끄러지면서 열리고, 마지막까지 열리면, 멈춤 턱에 걸리면서, 탁-하고 멈추고, 마찬가지로 밀어 넣었을때도 부드럽게 미끄러져 들어가서 큼-하고 닫히는 그런 서랍장이었는데, 아까 있었던 그 일을 떠올리면서, '그 불합리한 사건', 하고 서랍을 열고, '그 부당한 언사', 하고 서랍을 닫고, '그 부당한 체벌', 하고 서랍을 열고, '그 부당한 표정!', '그 부당한 언사!', '그 부당한 체벌!' ... 이런 식으로 트라우마에 몰입하면서, 화를 증폭하면서, 점점 서랍을 여는 힘이 더 커지더니, 마침내는 서랍이 뜯어져 나오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고급서랍장이라고 해봤자, 겉보기만 그런 것이지, 결국은 타카심으로 대충 조립된 서랍이어서 충격을 받자 타카심들이 숭숭 전부다 빠져버렸다.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지만, 오히려 극단적으로 냉정해져서, 즉시 신발장에서 망치를 가져다가, 빠진 타카심을 조심스럽게 살살 박아 넣으려고 해보았다. 콩-콩-. 잘 안된다. 아-씨. 짜증이 난다. 이것은 내가 알기로는 엄마 아빠의 혼수로 구입한 장롱과 서랍장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짜증이 더 난다.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지? 하는 생각이 울컥하고 밀려온다. 망치를 두드리는 힘을 조절을 못하게 된다. 울화통이 터진다. 왜 안되니, 왜! 하면서, 서랍을 패기 시작했고, 지쳐 나자빠질 때까지, 그렇게 화를 터뜨린다. 손이 얼얼해져서 망치를 놓고, 바닥에 주저앉았을때는, 결국 서랍은 망치질 자국으로 흉칙하게 뒤덥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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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 서랍장은 부모님 댁에 있으나, 부모님은 그 서랍장이 왜 그렇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 단 한번도 언급도 하지 않으셨다. 크게 혼이 나겠구나, 각오를 했었고, 이런 일을 저지른 나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렇게 된 참에 지금까지 말 못한 것들을 말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그건 더욱 속상했다. '모를 수는 없는데...' 누가봐도 명백하게 '박살'이 난 서랍장인데, 그 일을 저지를 사람은 오직 나 밖에 없는데, 왜, 적어도 '너가 그랬나?' '왜 그랬나?' '어쩌다 그랬나?' '뭐가 그렇게 화가 났나?' 이런 이야기, 왜 걸어주지 않는 걸까? 난 또 지금 이렇게 묵살당하는 것일까. 분개하면서, 나도 그것에 대해서 이제껏 다시 말하지 않는다. 우리 사이의 골은 그렇게 한번 더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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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 서랍장은 부모님 댁에 있으나, 부모님은 그 서랍장이 왜 그렇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 단 한번도 언급도 하지 않으셨다. 당시에는, 이제 크게 혼이 나겠구나, 각오를 했었고, 이런 일을 저지른 나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렇게 된 참에 지금까지 말 못한 것들을 말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그건 더욱 속상했다. '모를 수는 없는데...' 누가봐도 명백하게 '박살'이 난 서랍장인데, 그 일을 저지를 사람은 오직 나 밖에 없는데, 왜, 적어도 '너가 그랬나?' '왜 그랬나?' '어쩌다 그랬나?' '뭐가 그렇게 화가 났나?' 이런 이야기, 왜 걸어주지 않는 걸까? 난 또 지금 이렇게 묵살당하는 것일까. 분개하면서, 나도 그것에 대해서 이제껏 다시 말하지 않는다. 우리 사이의 골은 그렇게 한번 더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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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먼저 그것에 대해서 말을 꺼냈어야만 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내가 화가 난 것은, 그들의 잘못이고, 내가 그들에게 입힌 피해에 대해서도 내가 먼저 사과해야 할 일인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잘못은 아니고, 오히려 그것을 발견해 주지 않는 그들의 잘못이다, 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너무나 왜곡된 소리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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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쪽에서 말을 안거는 것이라면, 그 쪽도 이 쪽이 말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고. 사실, 이러한 폭력이 왜 생겨낫는지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이 폭력 그 자체에 대해서, 사과함으로서 대화가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런 다음에, 폭력의 연쇄에 대해서 말해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다만, 그것을 '연쇄'로 인정하지는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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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연쇄되는 것이라는 이야기. 그것을 어떻게 좀 해야 한다. 폭력은 연쇄되는 것이 아니다. 혹은, 아니어야 한다. 공격에는 방어가 있다. 방어를 하지 못하면 더 큰 피해를 입는다. 그렇지만, '공격과 방어', '폭력과 정당방위', 그리고, '폭력과 보복' 은 다들 섬세하게 구분되어야 하는 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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