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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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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22, 17:03:08, +0900>`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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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에 사는 고양이의 이름은 '소리'라고 한다. 하지만, '소리야' 하고 부르는 일은 평생 거의 없었고, 언제나 '소리-짱' 이라고, 짱즈케를 한다. 이름을 갓 지은때는, '소리-이!', '소리-야!' 하고 불러보기도 했었는데, 자꾸 첫음절에 강세가 붙어서, '소리'가 '쏘리'가 되는 현상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 '쏘리~!' 이렇게 되는데, 영어로 '미안해, 유감이다'라는 의미가 된다. 마치, '유감스러운 존재'라는 의미가 되는 것 같아서 그렇게 부르는 것을 기피하게 된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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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이름 잘못지었어. 이름 바꿔야겠어.'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동물병원에도 그렇게 등록되었고, 주변 사람들도 다들 그렇게 알고 있어서, 사태가 커져버렸던 터였고, 막상 다른 이름을 생각해도 '소리'라는 이름으로 돌아와버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실, 그런 의미론적인 생각들은 우리들의 머리속에서만 일어나는 것이지, 소리짱은 그다지 상관하는 것 같지 않았던 것도 한 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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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놔. 이름같은 거, 한번 정했으면, 끝이야. 뭘 또 왜 바꿔. 인간 정부 물러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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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들이 자기 편하게 붙인 이름이 인간들의 언어로 무슨 의미를 가지던 그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소리짱'에게 '소리'라는 음향은 어떤 호출-소리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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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짱을 만난 것은, 2016년 10월 어느날, 문래동 기계공장들이 많은 골목의 어느 한켠, 창고를 작업실로 쓰고 있었던 시절의 일이었다. 겨울이 오려는가 바람도 세차고, 제법 쌀쌀한 날이었다. 작업실에는 화목난로가 있었고, 장작을 두어개 태우면서, 온기를 가늠하고 있었다. 작업실로 사용하던 창고는 큰 길가에 나온 점포들의 뒤켠에 있었기 때문에, 점포들의 사잇길로 한 번 들어오는 좁은 골목길을 지나서 들어오게 되어있었다. 이 좁은 골목길에는 작업실 공간 외에도, 사람 사는 집들도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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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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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은 아마도 어딘가에 가볍게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는가 보다. 흐린 날씨에 늦은 오후 햇살이 골목길에 내려앉는 것을 거절하듯이, 어떤 작은 생명체가 비명에 가까운 울음을 내뿜고 있었다. 손바닥만한 작은 고양이가 텅 빈 골목길을 향해서, 텅 빈 하늘을 향해서, 찢어지는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우리는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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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너 괜찮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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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작은 고양이는 얼굴이 망가져있었다. 우리가 있는 것을 알기는 하는 것 같은데, 대답이나, 태도에 변화가 없다. 아니, 어쩌면, 우리를 향해서, 고함을 치기 시작한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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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 떨어져서 다쳤나봐.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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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네, 일단 작업실에 들어가자. 엄마 고양이가 올 수도 있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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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몸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골목이 쩌렁쩌렁하게 울려서, 누가 와도 벌써 왔어야 할 것 같은데, 엄마 고양이는 다른 사정이 있는지 나타나지 않고, 따듯한 작업실에 앉아서,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우리들도 안절부절이었다. 나는 계속 망설이고 있었던 편이었는데, 원정씨는 참다 못했는지, 셔터 문을 열고, 다시 골목길로 나가서 소리나는 쪽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다시 그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나도 뒤늦게 뒤를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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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작업실에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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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친구는 그 말을 듣기도 전에 이미 마음을 정한 것만 같이, '나를 구해줘.' 아니, '나를 구하라!' 라고 명령하듯이 우리들에게 외치고 있었다. 우리들은 약간의 손짓과 몸짓을 써서, '나를 따라와' 라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자, 그 생명체는 작은 몸뚱아리에 붙어있는 곧 부러질 것 같은 네개의 다리를 바닥에 거칠게 내동댕이 치면서,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집요하고 단호한 걸음을 딛어 가면서, 우리의 뒤를 따라 들어왔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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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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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업실에 들어와서도 광기는 금방 가라앉지 않았다. 쌩쌩불던 바람은 피하는데 성공했지만, 돌바닥이 차다. 뭔가 따뜻한 담요 같은 것을 차가운 돌바닥에 깔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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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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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기가 남아있는 화목난로 옆에 자리를 마련했다. 담요는 일단 사양하는 것 같았지만, 화목난로는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난로의 온기가 머무는 공간에 한 켠에 병든 병아리처럼, 엉거주춤하게 멈춰서서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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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제서야, 마침내, 정적이 찾아왔다. 세상도 한숨을 내리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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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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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를 키워본적은 없었지만, 예전 작업실에서 같이 작업실을 쓰던 분이 기르던 고양이가 두 마리 있었다. 그 고양이들도 손바닥만큼 작을 때 부터 길러졌는데, 몇번 주인분의 부탁으로 돌봐준적이 있기는 했었다. 이제는 베테랑 캣맘이 되신 그 분께 긴급연락을 취해서,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구했다. 만화에서 본 대로, 우유를 따듯하게 데워서, 먹으라고 줬는데, 냄새만 맡고 먹지는 않는다. 다만, 화목난로 옆에서 쉬고 있는 소리짱은 이따금씩 힘주어 웅크린 몸을 버티지 못하고, 균형을 잃는 몸짓을 보였다. 지금 비틀거린건지, 아니면 꾸벅하고 졸고 있는 건지 말이 안통하니 물어볼 수도 없고 조금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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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얼굴 한 쪽이 상처 딱지 같은 것으로 덮여있기도 했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동물병원을 수소문했다. 베테랑 캣맘 지인의 추천으로 소개 받은 동물병원에서는 길냥이를 인보하는 조건으로 치료비와 수술비를 크게 할인해주셨다. 여기서 '수술' 이란, 안구적출 수술을 말하는 것이었다. 소리짱은 허피스 바이러스 감염이었는데, 이를 눈치챈 어미고양이가 다른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밀어냈을 것이라고 의사선생님은 말했다. 게다가, 발견된 시기에는 이미 한쪽눈은 실명한 상태였고, 나머지 한쪽 눈은 백내장이 심하게 왔는데, 약을 써서 치료해보겠다고 하셨지만, 치료후 시력을 살리는데 실패하고, 다시, 적출수술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갑자기 소리짱은 시력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때, 우리는 '소리'라는 이름을 마음속으로 정하고 있었다. 소리짱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줄 이름,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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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짱의 병원비는 소리짱이 받은 치료의 내용에 비하면, 정말 저렴한 금액이었지만, 아무 계획도 없이 이 상황을 맞닥드린 우리에게는 상당히 부담이 되는 지출이었다. 고민끝에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모금활동을 하게 되었다. 지출한 비용의 일부분만이라도 후원 받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소식을 접한 많은 분들이 다들 큰 돈을 보내주셔서, 아차하는 사이에 전액이 모금되어버렸다. 정말 아차, 하면 원래 지출한 액수보다도 더 많이 모일 위험에 처할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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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소리짱, 축복받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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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상, 길고양이를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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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이쁘다, 우리 집에 갈래?' 하고 추파를 던지면서, 다녔던 나였지만, 이렇게 소리짱을 갑자기 책임지게 되니, 고민이 되게 되었다. 밤새고 집에 안들어가는 날도 많고, 해외 여행 갈때도 있고, 지방출장도 가고, 내 한 몸 데리고 살기도 정신이 없는데, 부담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일단 소리짱이 아프니까, 나을 때까지는 같이 있어야지.' 다 낫고 나면, 다시 생각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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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짱은 영양실조여서 수액도 맞고, 수술을 잘 마쳤다고는 하지만, 집에 와서도 기운이 전혀 없어서, 살아날 수 있는 걸까? 걱정하게 했다. 눈이 안보이는 상태로, 사람과 같이 사는 고양이 수업을 받아야 했다. 화장실 모래에 쉬하는 법을 어떻게 가르쳐줘야 하나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모래를 촉각으로 감지하자 금방 참았던 쉬를 하고, 모레를 덥고 아주 잘하는 걸 보고 놀라웠다. 반면, 소리짱은 너무 어릴때 엄마와 헤어져서, 젖을 떼지 못했기 때문에, 음식물을 핧아서 먹어본적이 없어서, 한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영양실조가 심해지는 헤프닝도 겪었다. 병원에서 초유를 손가락에 찍어서 입에 발라주면서 먹는 법을 가르쳐주자, 봇물터지듯이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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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세 가지가 충족되자, 마침내, 몸도 좋아지고, 수술상처도 좋아지고 있었다. 우리들도 거칠지만, 이것저것 배우고, 나아지고 있었다. 지인들에게 물어보고, 인터넷도 찾아본다. 다만, 소리짱은 눈이 안보이니까, 그 모든 비장애고양이들에게 맞춰진 가이드들이 지시하는 내용을 한 단계 의미화시킨 후에 소리와 촉각으로 번역하는 과정을 거쳐야했다. 그 와중에 어떤 것이 잘된 번역이고, 어떤 것은 잘못된 번역인지도 시행착오를 통해서 배워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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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2, 19:17:44, +0900
살기 위한 투쟁이었다. 사료를 먹는 법을 배운 소리짱은 점점 회복에 속도를 붙여나갔다. 어린 생명은 회복도 빠르다. 소리짱은 하루 종일 잠을 잤다. 먹는 일이 끝나면, 다시 잔다. 고양이가 영양실조에 걸리면, 등가죽을 당겨보라고 병원에서 배웠다. 등가죽이 제자리로 빠르게 돌아간다면, 괜찮은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한다. 한번씩 녀석의 등가죽을 당겨본다. 다행히, 영양실조는 잘 넘긴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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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짱과 우리 사이의 관계에는 아직 즐거움이란 없었다. 우리는 항상 소리짱을 괴롭히는 사람들이었다. 병원에 강제로 데려가고, 입원을 시키고, 수술을 시키고, 약을 먹이고, '사료'라는 이상한 음식을 먹으라고 하고, 화장실을 사용하라고 하고, 그러고 나면 피곤해서, 잠을 잤다.
몸이 회복되면서, 서서히 우리들도 소리짱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무언가를 시도해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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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혼자 둘수가 없어서, 작업실에 함께 출퇴근을 했는데, 내가 즐겨 입던 초록색 자켓 속에 넣고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지금도 그 자켓은 기억하는 것 같다. 소리짱은 굳이 추운 겨울에도 항상 자켓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바깥 바람을 맞으려고 했다. 우리는 소리짱이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사선생님과 인터넷은 보통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게다가,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고양이가 놀라면, 길에서 갑자기 튀어나가게 되는데, 길거리에는 차가 다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가 있다고 한다.
'야, 자전거 태워주니까, 오백원 내라.'
어쨌든, 우리들은 소리짱처럼 눈이 없는 고양이인데도 산책하는 고양이의 냥스타그램 등을 발견하고, 소리짱도 산책냥이가 될 소질이 있다고 꿈을 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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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이 없어도 거침이 없었다. 테이블의 높이 같은 것이 익숙해지자 뛰어오르기도 하고, 뛰어내리기도 했다. 그치만, 테이블위가 항상 잘 치워져있지 않다보니, 소리짱은 생각도 못한 장애물이 갑자기 출현하는 상황을 몇번마주하게 된다. 눈이 없는 소리짱은 특히나 어릴때는 젊은 혈기(?)로 많이 부딪히고 다녔다. 어지간히 조금 부딪히거나 채이는 것은 그냥 신경쓰지 않을 만큼, 세상은 흥미로운 것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테이블이 정리되어 있지 않았던 것은 많이 실망했는지, 곧 뛰어 오르는 일은 그만두게 되었다. 소리짱, 그래도 우린 기억하고 있어. 너가 책상에도 무릎에도 뛰어올라 오곤 했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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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안보여도, 소리짱은 사냥을 할 수 있었다. 요점은 고양이 스텝이다. 사뿐사뿐. 그리고, 존재를 숨긴다. 잠자리, 파리 이런것들이 나타나면, 곧잘 잡아오거나, 침을 발라서, 꼼짝못하게 만든 파리를 갖고 놀다가 버리고 간다거나. 하여튼, 거침이 없었다. 소리짱은 뒷일은 잘 생각하지 않는 편이라서, 옥탑방에 살 때, 바깥에 놓인 높은 사다리를 올라가서는 못 내려와서 울고 불고 난리 부리기도 했다. 지금도 옥탑에서 뛰어 놀았던 기억은 소중히 간직하고 있겠지. 다음엔 마당있는 집에 가서 산책냥이 도전해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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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부딪히는 것을 조금 신경쓰기 시작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여기에는 몇번의 사건들이 계기가 되었을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탈리아에 여행 가서 사왔던 예쁜 찻잔이 테이블위에 있었는데, 소리짱이 테이블 위로 돌아다니다가, 밀어서 떨어뜨려서 깨뜨린 적이 있었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소리짱 정말 밉다고 나무랐다. 고래고래고래고래. 그런다음에는, 삼각형 네모가 그려진 또 다른 찻잔을 비슷한 방식으로 깨서 잃어버리게 되었는데, 애초에 테이블에서 떨어지기 쉽게 놓여져있던 것도 잘못이었지만, 나는 잘 탓하는 사람이었다. 너 때문이야. 너가 책임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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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보니 그랬을까, 소리짱이 좀 위축된 걸까. 지금도 생각하면 속상하지만, 뭐 이미 벌어진 일을 어쩌겠나. 누구라도 탓하고 싶은 심정인 내 자신의 우울이 소리짱에게 씌워진 상황과 같은 것이다. 누구라도 탓하지 않으면, 누구라도 희생시키지 않으면 안될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내 안에 배긴, 어떤 자국, 어떤 상흔이 지금도 아주 다 낫지 못했다는 것을 계속해서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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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검은화면은 무언가, 뿌옇고, 흐리다. 모든 것들이 차분하게 내려앉아 있는가? 소리들이 눈을 잘 감고 있는가. 분자들이 잘, 숨쉬고 있는가. 열쇠가, 전구가, 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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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지가, 물속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파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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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를 막고, 또 그 위에, 헤드폰을 낀다. 음악을 크게 튼다. 귀를 막고, 귀는 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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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엇그제였나, 어떤 작가를 두고, 원정이 '빅네임'이라고 언급했는데, 그것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 이전부터였는지, 무언가 그 사람의 작업과 태도를, 그 미술계 미술-미술 거리는 '짓'을 보고 있자니, 혐오가 치고 올라와서, 나도 모르게, 분개를 혹은 그 혐오를 사방팔방에 내뿜고 있었나보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주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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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말이다. 누군가가, 연구모임같은 것을 같이 하자고 제안을 해주었는데, 예상되는 멤버들을 보면, 꽤 내놓으라 하는 사람들, - 그러니까, 뭘 '내놓으라' 는 걸까. - 아무튼, 내놓으라 하는 그런 사람들이 함께 하자고 하는 사람들 속에 들어가 다이아몬드 처럼 박혀서 빛이 나고 있더라. 모지? 부러운걸까, 나는. 아님 모지, 왜케 싫지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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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의 작업 프로필 페이지를 보다가는, 또한, 울고 싶어지기도 하다가, 문득, 아- 이 사람의 작업은 나에게 괜찮은걸까. 혐오스럽지는 않은데, 다만, 눈물이 날것 같은 이유는 뭘까, 그건 그저 무슨 '작업이 좋아서요, 감동'. 같은 것이 아니라, 나를 대입할 수 있기 때문에, 같은 처지여서. 그런가, 싶다. 나도 이런데, 우리는 이렇게 해서, 잘 지낼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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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이런 '빅네임'들과 같이 작업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다는 것은 사실, 좋은 걸까. 나는 이들과 이들이 속하려고 노력하는 세계의 그 혐오스러움을 어떻게 메타화 시키기라도 해야 하는 걸까? 아, 그래. 이런이런 조건들 속에서, 그것에 맞춰가며 이렇게 저렇게 잘, 그 기득권자와 권력자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들을 그렇게 잘, 풀었구나. 하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다만, 나는 별로 관심없는 그런 '저들만의 리그'에 해당하는 그렇고 그런 예술, 시나라까먹는 소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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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일단 그래서, 한국 에르메스 미술상, 심사위원은 외국사람이더라, 어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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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그래서, 상금이라는게 고작 2천만원이더라, 이건 뭐 내가 다니던 회사의 1년간 봉급에서, 보너스 정도 될까 말까한 금액이고, 지금 내가, 일용직으로 프로젝트 계약해서 1건당 받는 개발 용역 비용보다 약간 더 되는 금액에 해당하는데, 그게 고작. 그 대단한 '한국 에르메스 미술상'의 상금의 액수가 고작, 그것밖에 안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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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계가 얼마나 피폐하고, 가난하고, 열악한지 말하지 않아도 전해져 올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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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상황이니, ... 결국, 그렇게 시나라까먹는 소리들을 잘 끼워 맞춰서, 하는 것을 나는 응원해 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미안하다. 나는 한국 역사/ 민족/ 문화. 그런 이야기 거대서사. 정말 혐오한단다. 그건 나와는 관계가 없어. 그냥 관계만 없으면 다행이게? 관계가 없는데, 관계를 지우는 걸 뭐라고 하니? '압제'와 '주입'이라고 한단다. 그러니, 숨이 막히고, 쳐다도 보고 싶지 않은 그런 게 바로 그런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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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도, 이걸 내가 받아주고, 그런 사람들이랑도 희희낙락 웃으면서 같이 작업해야 하고, 또 나도 그들처럼 되려고 잘 살펴보아야하고, '성공'해서 고작 이천만원이든, 손에 잠깐 쥐는 척이라도 하기 위해서, 기자양반들한테도 잘 받아적으라고, 작가님 말씀 잘 읊어야 하고.... 그런거냐 지금. 아, 그런거냐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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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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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 잘못된 것이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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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내가 그것들이 '잘못되었어' 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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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는 건, 사실 내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세상을 역으로 잘못된 것으로 인식 및 규정하고, 비난하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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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스팔트 위에서 녹아내리는 얼음처럼,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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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산후조리를 위한 케겔운동 가이드 동영상에서 나온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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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아스팔트 위에서 녹아내리는 얼음이라니, 내 허리가, 내 골반이 지금 이 매트리스 위에서, 이 매트위에 이렇게 놓여있는 내 허리춤이, 뜨거운 아스팔트위에서 물기를 줄줄 흘리면서, 녹아내리고 있는 얼음처럼. 그렇게 놓여있다니. 녹아, 흘러,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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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겔 운동은, 항문을 조이고 푸는 것을 반복하는 운동이라는데, 출산 후 산후조리에도 좋고, 남성은 전립선 강화에도 좋단다, 여튼 성감도 좋아진다고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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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이는 과정에서 실로 꽤메져서 위로 당겨지는 느낌을 찾아보라고 했는데, 그것도 뭐랄까. 알것 같기도 한 느낌이다. 내가 들이마시는 호흡으로 내 코끝에서 내 항문과 요도가 꿰메어진 흰 명주실이 팽팽하게 당겨 올려지는 것에 대한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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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짱 [#]_ 이랑 함께 지내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일단, 내가 동물이라는 것이다. 인간이기 이전에, 혹은 인간이면서, 혹은 인간이라는 사실이 말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내가 소리짱, 너와 같은 동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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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가를 유투브 보고, 좀 따라해보고 있는데, 다운-독, 이란 자세가 있어. 처음엔, 솔직히 조금 부끄러웠달까, 아래로 향하는 개의 자세라는 것을 한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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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지만, 소리짱을 보면, 너무 잘해, '다운-캣' 스트레칭. 종종 보여주는데, 나도 동물로서 질 수 없지, 하고 생각해서 조금 더 노력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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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내가 개랑 같다는 점에 있어서, 부끄럽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럼 뭐였을까? 인간은 개보다 나은 존재라고, 우월하거나, 상위의 존재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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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에게 개라는 것은 많은 경우, 좋은 소리가 아니다. 개-새끼라고 한다거나, 개-같은-자식. 근데, 개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자, 다운-독. 발꿈치 바닥에, 꾹. 눌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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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제는 다운-독 자세가 부끄럽지는 않다. 다만, 부러울 뿐이다. 독(dog)들이.. 그리고 소리짱이 무한 스트레칭, 냥-스트레칭 시전할 때 마다.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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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체로서, 존경스럽다. 나도 노력하면, 너처럼 될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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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스팔트에서 녹아내리는 얼음이 된 '나'를 상상하는 것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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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이 어찌나, 평화로운 장면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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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런 고민도, 의식도 없다, 얼음이 된 나는 나를 의식하지도 않는다, 사고하지도 않는다, 다만, 관망하고 있을 뿐이다. 얼음은 녹아내리고, 그것으로 끝이 난다. 더이상 어떤 고민도, 어색함도, 불안도 가질 수 있는 '의식'이란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존재. 사물. 무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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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나는 아스팔트가 따뜻하다는 것을 감각하면서, 녹아내린다. 감각할 '정신'이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데, 왜 온기만은 감각한다고 상정하고 있을까. 신기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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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원래 공식적으로는 '소리'가 이름인데, 약간 일본식이랄까? ~짱을 붙여서 부른다. 게다가, 원래 ~짱이라는 건 여성에게 붙이는 접미사라는데, '소리'는 생물학적으로는 남성 고양이이지만, 어쨌든 입에 붙어버려서, '소리짱'이다. 소리짱에게 변명하자만, 나도 남성이지만, 두호짱으로 부르고, 불리니까, 아 그런거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도? 하고 생각해주면 좋겠네
| 흉식 호흡과 복식 호흡이 있다. 사실, 형은 교회에서 찬양단원이었는데, 합창과 중창. 이런것들에 대해서 무언가 매료라도 된것인지. 꽤나 열심히 했었다. 대학에 가서도 합창단에 들어가서 활동했었다. 어쨌든 그래서, 대학 생활을 하던 시절에 항상 노력하던 것이, 복식 호흡이란 것인데, 나는 그것을 좀 따라해보려고 노력했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나? 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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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흉식 호흡은 나쁘고, 복식 호흡은 좋다. 라는 이분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면, 내가 따라 하는 유투브 요가에서는 사실, 두가지를 다 사용하고 훈련하고 있었지. 흉식 호흡은 또 그 나름대로 다른 묘미가 있다. 산소포화도를 강하게 올리는 느낌이 주는 운동감도 있다. 숨은 숨이다. 좋은 숨과 나쁜 숨은 정해진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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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에 대해서 많이 신경쓰고 지낸다. 그럴수록 더, 어떤 수행에 있어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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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짱에 대한 이야기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란, 사실 어떤 폭력에 대한 것이다. 폭력. 나는 소리짱을 죽으라고, 발로 걷어찬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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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우리의 관계는 어떻게 시작됐는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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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나의 생각이나 관점이란 것들이 계속해서 바뀌기 때문에, 어느 한가지로 말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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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계속해서 방황하는 사물이거나,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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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님이 '아, 이런 이야기들을 이대로 실는 것이 좋을까요?' 하고 물었다. 나는, '글쎄요, 아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읽지는 않지 않을까요?' 라고 늑장을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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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늑장을 부리는 것이 일생의 사업이다. 언제나 늑장을 부리고 앉아있다. 나무늘보라는 동물이 있는데, 실제로 본적은 없다만, 어린이 과학만화책에 그려진 나무늘보의 모습과 형태는 아주 흥미로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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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지간히도 그 동물이 마음에 들었는가 보다 싶기도 하다. 너는 마치, 하나의 비닐봉다리처럼 나뭇가지에 긴 두팔로 메달려있었다. 그 늘어진 팔이란, 정말 아스팔트위에서 녹아내리는 얼음처럼, 두말할 것도 없이, 중력에 오로지 지배당하는 축 늘어진 팔이었다, 그것은 더이상 생명체의 그것도 아닌 것 처럼, 마치 수박이 든 비닐봉지의 손잡이 부분을 나뭇가지에 걸어 놓은 것 처럼, 정확하고 물리적으로 효율적인 타원을 그리며, 너의 익살스러운 얼굴과 몸덩어리를 그 주머니 안에 그저 담고만 있는 것이었다. 저러고 열두시간이고 메달려있을수 있다던가, 제대로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간에 세상 모릅니다 하고, 그저 메달려 있기만 할 수가 있다는 것이 너의 일상이라는 것을 들었을 때, 아. 하고 눈이 멈춰버렸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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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는 원래 그렇게 '냐옹, 냐옹' 하는 동물이 아니라고 한다는 말도 어디선가 들었다. '냐옹, 냐옹' 하는 것은 그러니까, 사람들한테, 집사들한테 말을 거는 것이거나, 무언가를 지시하는 것이지, 그들의 언어생활속에 '냐옹, 냐옹'이란 것이 그다지 유의미하지는 않다는 이야기였다. 여튼, 소리짱도 말 수 없는 고양이었는데, 어느날부터인가 갑자기, 우리들의 말을 따라하기 시작을 했다. 마치, 말을 거는 것과 같이. 그러고 나서, 나의 분노조절장애도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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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짱이 아주 애기 였을때, 그러니까, 영양실조로 비틀거리면서, 마지막 안간힘을 다해서, 빽- 빽- 울어대면서, 우리들의 발걸음을 따라서, 작은 발로, 거인처럼 땅을 진동하면서, 우리의 작업실로 따라, 걸어들어왔을때는, 그리고, 10월 말의 추운 날, 따뜻한 화목난로 곁에서, 낯설은 두명의 구조자들과 함께 저녁시간을 보내던 그 날에는, 곧 쓰러질 것 처럼, 비틀 거리고 있었지만, 휏대위에서 조는 참새 처럼, 쓰러질듯 쓰러질듯 하지만, 겨우 메달려있는 작은 참새 새끼처럼 그렇게 하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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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집에 데려와서, 우유? 라도 줘보았는데, 먹지 않고. 그런데, 먹고 싶은데, 먹지를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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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다 죽게 되지 않을까. 하다가, 병원에 가서 두 눈을 제거하고 다시 집에 돌아왔을때는, 아직은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찌나 하늘이 꺼질 것 처럼 우울하던지. 너의 존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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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때, 문을 꼭 닫고만 있는 너에게 내가 말을 걸기 시작한 것이, 손으로 소리를 내면서, 하는 소리극장 같은 것이었지. 아마, 이거 병원도 가기 전에 시작했었나? 싶기도 하고. 정확히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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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씩 몸의 기운을 차리고, 많이 자고, 그런다음에는, 손 소리 놀이에 푹 빠져들었지. 그때는, 귀여웠지, 물어도 귀엽게 물고, 그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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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중에 알았더랬지, 손으로 놀아주면 안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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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손이 장난감이 된 소리짱은, 이후로도 내 손은 물어도 되는 물건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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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가 나도록 깨물어서, 나의 분노를 있는대로 사는 소리짱이었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고, 인터넷에서 찾아본, 손 무는 고양이 버릇 고치는 방법들이란 것들도, 다 눈이 보이는 고양이를 위한 것들이었는지 잘 되지를 않았다. 일단 눈을 마주보고, 권위있게 내려다 보는 시선... 이런것은 상대방이 눈이 없으니까, 잘 될리가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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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다가, 나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소리짱에게 있어서, 나의 손과 나의 입과 나의 몸이 하나의 연결된 객체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눈은 연결을 파악할 수 있지만, 소리와 막연한 동시성, 냄새가 유사한 것. 이런것들이 이 모든 '소리현상' '감각현상'들의 하나의 개체로 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인식시킬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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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또, 그다니, 좋은 집사들이 되지를 못한다. 지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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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마찰이 안그래도 어린 소리짱에게 없을리가 없다. 다음 문제는 쉬를 하는 문제인데, 처음에는, 시멘트 같은 회색 색깔의 모레 화장실을 사용했었는데, 금방 적응을 잘했었다. 그런다음에는 두부모래로 바꿨는데, 아 이게, 바꾸는게 정말 싫은 건지.. 맘에 안드는 건지, 냄새가 나는 건지, 이불에도 쉬하고, 방에도 쉬하고, 방광염도 자주 걸려서, 그것때문에 쉬하고, 옷에도 하고, 내 다리에도 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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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안보이니까, 탁자위에 두었던 아끼는 찻잔들도 몇개 소리짱 너가 깨먹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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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그러그러 저러저러 했었다......
암튼, 그래서 소리짱이 물어서 내가 했던 행동이 같이 무는 것이었다. 아니, 동물로서 예의를 모른다길래, 가르쳐줘야겠다. 나도 물어야지하고.. 물었는데
귀 끝을 물어서 귀 끝이 살이 약간 2미리 정도 떨어졌는데, '맛 좀 봐라. 통쾌하다!' 했었는데, 이게 아, 금방 자랄줄 알았는데, 몇개월이 지나도, 귀에서 떨어진 살점이 회복이 안되는 거야. 아니, 이게 계속 그 부분이 그 상태로 이쁜 귀가, 타원으로 이쁘게 생겼는데, 거기만 쪼금 살점이 떨어져있어 가지고, 아, 내가 진짜, 안타깝고 미안했었는데, 소리짱은 모 사실 상관도 하지 않고, 그냥 물고, 쉬하고, 사고치는 것은 여튼 그것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다행이 한 일년 좀더 지나면서는 없어지더라, 너무 다행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