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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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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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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에 사는 고양이의 이름은 '소리'라고 한다. 하지만, '소리야' 하고 부르는 일은 평생 거의 없었고, 언제나 '소리-짱' 이라고, 짱즈케를 한다. 이름을 갓 지었을 때는, '소리-이!', '소리-야!' 하고 불러보기도 했었는데, 자꾸 첫음절에 강세가 붙어서, '소리'가 '쏘리'가 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면, 영어로 '미안해, 유감이다'라는 의미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그런 발음을 피하려고 하다보니, '소리짱'이 된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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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을 잘못지은 것 같아. 이름을 바꿔야겠어!'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동물병원에도 그렇게 등록했고, 주변 사람들도 다들 그렇게 알고 있어서, 사태가 커져버린 상황이었다. 막상 다른 이름을 생각해내서, 연습을 해보아도 '소리'라는 이름으로 돌아와버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실, 그런 의미론적인 생각들은 우리들의 머리속에서만 일어나는 것이지, 소리짱은 그다지 상관하는 것 같지 않았던 것도 한 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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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이름같은 건, 한번 정했으면, 끝이야. 뭘 또 왜 바꾸자는 거야, 독재 인간 정부 물러가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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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들이 자기 편하게 붙인 이름이 인간들의 언어로 무슨 의미를 가지던 그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소리짱'에게 '소리'라는 음향은 어떤 호출-소리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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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짱을 만난 것은, 2015년 10월 말, 문래동 기계공장들이 밀집된 지역에서, 어느 한켠에 있는 창고를 작업실로 쓰고 있었던 시절의 일이었다. 겨울이 오려는가 바람도 세차고, 제법 쌀쌀한 날이었다. 작업실에는 화목난로가 있었고, 장작을 두어개 태우면서, 온기를 가늠하고 있었다. 작업실로 사용하던 창고는 큰 길가에 나온 점포들의 뒤켠에 있었기 때문에, 점포들의 사잇길로 한 번 들어오는 좁은 골목길을 지나서 들어오게 되어있었다. 이 좁은 골목길에는 작업실 공간 외에, 사람들이 사는 집들도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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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은 아마도 어딘가에 가볍게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는가 보다. 흐린 날씨에 늦은 오후 햇살이 골목길에 내려앉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어떤 작은 생명체가 비명에 가까운 울음을 내뿜고 있었다. 손바닥만한 작은 고양이가 텅 빈 골목길을 향해서, 텅 빈 하늘을 향해서, 찢어지는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우리는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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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너 괜찮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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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작은 고양이는 얼굴이 망가져있었다. 우리가 있는 것을 알기는 하는 것 같은데, 대답이나, 태도에 변화가 없다. 아니, 어쩌면, 우리를 향해서, 고함을 치기 시작한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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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붕 위에서 떨어져서 다쳤나봐.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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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네, 일단 작업실에 들어가자. 엄마 고양이가 올 수도 있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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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몸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골목이 쩌렁쩌렁하게 울려서, 누가 와도 벌써 왔어야 할 것 같은데, 엄마 고양이는 다른 사정이 있는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따듯한 작업실에 들어와 앉아서, 그 울음 소리를 듣고만 있자니, 우리들도 안절부절이었다. 나는 계속 망설이고 있었던 편이었는데, 원정씨는 참다 못했는지, 셔터 문을 열고, 다시 골목길로 나가서 소리나는 쪽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다시 그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나도 놓치지 않고 뒤를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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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작업실에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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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친구는 그 말을 듣기도 전에 이미 마음을 정한 것만 같이, '나를 구해줘.' 아니, '나를 구하라!' 라고 명령하듯이 우리들에게 외치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약간의 손짓과 몸짓을 써서, '우리를 따라와' 라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자, 그 생명체는 작은 몸뚱아리에 붙어있는 곧 부러질 것 같은 네 개의 다리를 바닥으로 거칠게 내동댕이치면서,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집요하고, 단호한 걸음을 딛어 가면서, 우리의 뒤를 따라 들어왔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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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업실에 들어와서도 광기는 한동안 가라앉지 않았다. 쌩쌩불던 바람은 피하는데 성공했지만, 돌바닥이 차다. 뭔가 따뜻한 담요 같은 것을 차가운 돌바닥에 깔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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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쪽으로 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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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기가 남아있는 화목난로 옆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지만, 담요는 거절당했다. 다만, 화목난로는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난로의 온기가 머무는 공간의 한 모서리에 병든 병아리처럼, 엉거주춤하게 멈춰서서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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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제서야, 마침내, 정적이 찾아왔다. 세상도 한숨을 내리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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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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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를 키워본 적은 없었지만, 예전 작업실에서 같이 작업실을 쓰던 분이 기르던 고양이가 두 마리 있었다. 그 고양이들도 손바닥만큼 작을 때 부터 길러졌는데, 몇번 주인분의 부탁으로 돌봐준적이 있기는 했었다. 이제는 베테랑 캣맘이 되신 그 분께 긴급연락을 취해서,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구했다. 만화책에서 본 대로,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서, 먹으라고 줬는데, 냄새만 맡고 먹지는 않는다. 다만, 화목난로 옆에서 오똑이처럼 서서 쉬고 있는 소리짱은 이따금씩 웅크린 몸의 균형을 잃는 듯한 동작을 했다. 지금 비틀거린건지, 아니면 꾸벅하고 졸고 있는 건지 잘 가늠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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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얼굴 한 쪽이 상처 딱지 같은 것으로 덮여있어서 치료가 시급해 보였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동물병원을 수소문했다. 베테랑 캣맘 지인의 추천으로 소개 받은 동물병원에서는 길냥이를 인보하는 조건으로 치료비와 수술비를 크게 할인해주셨다. 여기서 '수술' 이란, 안구적출 수술을 말하는 것이었다. 소리짱은 허피스 바이러스 감염이었는데, 이를 눈치챈 어미고양이가 다른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무리로부터 밀어내어 버린 것으로 보인다고 의사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게다가, 발견된 시기에 이미 한쪽 눈은 실명한 상태였고, 나머지 한쪽 눈도 백내장이 심하게 온 상태여서, 조금이라도 시력을 살릴 수 있을지, 약을 써서 치료해 보겠노라고 하셨지만, 며칠 후 전화로 상태가 악화되어서 나머지 한쪽 눈도 수술로 제거할 수 밖에 없다고 하셨다. 그렇게, 갑자기 소리짱은 시각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때, 우리는 '소리'라는 이름을 마음속으로 정하고 있었다. 소리짱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줄 존재의 이름,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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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짱의 병원비는 소리짱이 받은 치료의 내용에 비하면, 정말 저렴한 금액이었지만, 아무 계획도 없이 이 상황을 맞닥드린 우리에게는 상당히 부담이 되는 지출이었다. 고민끝에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모금활동을 하게 되었다. 지출한 비용의 일부분만이라도 후원 받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소식을 접한 많은 분들이 너도나도 큰 후원금을 보내주셔서, 순식간에 전액이 모금되어버렸다. 정말 여차하면 원래 지출한 액수보다도 더 많이 모일 위기에 빠질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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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소리짱, 축복받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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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이모, 삼촌들이 작업실을 찾아와서, 맛있는 것들과 선물들을 남겨주고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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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에, 길고양이를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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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이쁘다, 우리 집에 갈래?' 하고 추파를 던지면서, 다녔던 나였지만, 이렇게 소리짱을 갑자기 책임지게 되니, 고민이 되게 되었다. 밤 새고 집에 안 들어가는 것도 좋아하고, 해외 여행 갈때도 있고, 지방출장도 가야하고, 내 한 몸 데리고 살기도 정신이 없는데, 부담이 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일단 소리짱이 아프니까, 나을 때까지는 같이 있어야지.' 다 낫고 나면, 다시 생각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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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짱은 수술을 잘 마쳤다고는 하지만, 영양실조여서 수액을 맞으면서 입원치료도 받고 퇴원했다. 집에 와서도 기운이 전혀 없어서, '잘 회복할 수 있으려나', 걱정하게 했다. 게다가, 눈이 안보이는 상태에서, 사람과 같이 사는 고양이 수업도 받아야 했다. 화장실 모래에 쉬하는 법을 어떻게 가르쳐줘야 하나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모래를 촉각으로 감지하자 금방 참았던 쉬를 하고, 모래를 덥고 아주 익숙하게 잘하는 걸 보니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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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 밥을 잘 안먹는 바람에 영양실조가 다시 악화하기도 했다. 고양이가 영양실조 상태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등가죽을 손으로 움켜잡았다가 갑자기 손을 떼고, 잡아당겨졌던 등가죽이 펴지면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관찰해서 판단할 수 있다고 한다. 자연스럽고 신속하게 돌아간다면, 괜찮은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잠만 자는 녀석의 등가죽을 한번씩 잡아당기면서, '사료가 마음에 들지 않는걸까', '어디 다른 곳이 아픈데가 있는 걸까' 하며 초조한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은 다시 병원에 데리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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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의 원인은 뜻밖에도 먹이가 제공되는 방식에 있었다. 소리짱은 젖을 떼기 전에 엄마와 헤어져서, 엄마 젖을 빨아먹는 것 말고는 무언가를 먹어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릇에서 음식물을 핧아먹는 다는 것도 상상할 수가 없어서 너무나 먹고 싶은데, 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병원에서는 간호사분이 초유를 손가락에 찍어서 입에 톡톡 발라주면서 먹는 것이라는 가르쳐주었고 그제서야, 소리짱은 봇물터지듯이 그릇에 담긴 음식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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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세 가지가 충족되자, 마침내, 몸도 좋아지고, 수술상처도 좋아지고 있었다. 우리들도 거칠지만, 이것저것 배우고, 나아지고 있었다. 지인들에게 물어보고, 인터넷도 찾아본다. 다만, 소리짱은 눈이 안보이니까, 그 모든 비장애고양이들에게 맞춰진 가이드들이 지시하는 내용들을 한 단계 의미화시킨 후에 소리와 촉각으로 번역하는 과정을 거쳐야했다. 그 와중에 어떤 것이 잘된 번역이고, 어떤 것은 잘못된 번역인지도 시행착오를 통해서 배워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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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료를 먹는 법을 배운 소리짱은 점점 회복에 속도를 붙여나갔다. 처음 만났을 때, 보여주었던 삶을 향한 투지가 다시금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이번엔 회복을 향한 투지. 소리짱은 아주 열심히 먹고, 아주 열심히 잠을 잔다. 일어나면, 다시 먹고, 그러고 나면, 또 하루 종일 잠만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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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짱과 우리 사이의 관계는 아직 시작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항상 소리짱을 괴롭히는 사람들이었다. 병원에 강제로 데려가고, 입원을 시키고, 수술을 시키고, 약을 먹이고, '사료'라는 이상한 음식을 먹으라고 하고, 화장실을 사용하라고 하고, 그러고 나면 피곤해져서, 다 같이 잠을 잤다. 일단은, 어서 건강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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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소리짱은 한없이 우울해보였다. 엄마한테 버림 받고, 형제들이랑 떨어졌고, 고생도 많이해서 그런지, 하루 종일 잠만 자는 녀석의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우울은 절망에 가까운 것이었다. 살아 남기는 했는데, 무슨 낙으로 살아야 할지 막막해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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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추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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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돌봄이 필요한데, 집에 혼자 둘수가 없어서, 작업실로 함께 출퇴근을 했다. 처음에는 이동장에 넣어서, 자전거 뒤에 싣고, 이동했었는데, 엄청나게 울고, 이동장 안에 쉬도 하고, 뭔가 스트레스가 엄청난 것 같았다. 그러다, 하루는 이동장에 안들어가려고 하면서 내 몸에 찰싹 들러붙길래, 그대로 내가 즐겨 입던 초록색 솜잠바 속에 소리짱을 넣고 자크를 올리고 자전거를 탔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12월이었다. 지금도 소리짱이 그 자켓은 기억하는 것 같다. 원래 고양이를 데리고 실외에서 이동할 때는 고양이가 놀라면 찻길로 갑자기 튀어 나가기 때문에, 반드시 이동장에 넣거나, 몸줄을 해서 잘 잡고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아직 몸줄 같은 게 없었고, 소리짱은 내 피부에 최대한 가깝게 붙어서, 심장소리나, 온기를 느끼고 있지 않으면 안심이 안되는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더 안전해보자고, 잠바의 자크를 꽉 올려서 채우려고 하면, 소리짱은 저항하면서 자켓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바깥 바람을 맞겠다고 했다. 우리는 소리짱이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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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자전거 태워주니까, 오백원 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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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든, 우리들은 소리짱처럼 눈이 없는 고양이인데도 어깨냥이에다가, 산속에서 산책도 하는 멋쟁이 고양이의 냥스타그램을 발견하고, 소리짱도 산책냥이가 될 소질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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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각이 없어도 거침은 없다. 테이블이든, 세탁기든, 높이가 익숙해진 사물들 위로 뛰어오르기도 하고, 뛰어내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테이블 위가 항상 잘 치워져있지 않다보니, 소리짱은 생각지도 못한 장애물이 갑자기 출현하는 상황을 몇번 마주하게 된다. 눈이 없는 소리짱은 특히나 어릴때는 젊은 '혈기'로 여기저기 많이 박치기를 하고 다녔다. 어지간히 조금 부딪히거나 채이는 것은 그냥 신경쓰이지도 않을 만큼, 세상은 신나는 것들로 가득했는가 보다. 하지만, 한두번 테이블이 정리되어 있지 않았던 것만은 많이 실망했는지, 머지 않아 뛰어 오르는 일은 그만두게 되었다. 소리짱, 그래도 우린 기억하고 있어. 너가 책상에도 무릎에도 뛰어올라오곤 했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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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안보여도, 소리짱은 사냥을 할 수 있다. 요점은 고양이 스텝이다. 사뿐사뿐. 그리고, 존재를 숨긴다. 잠자리, 파리 이런것들이 나타나면, 곧잘 잡아오거나, 침을 발라서, 꼼짝못하게 만든 파리를 갖고 놀다가 버리고 간다거나. 하여튼, 거침이 없다. 어린 시절의 소리짱은 뒷일은 잘 생각하지 않는 편이어서, 옥탑에 살 때, 바깥 마당에 놓인 높은 사다리를 저 혼자 올라가서는 못 내려온다고, 동네방네 떠들썩하게 울고 불고 난리 부리기도 했다. 지금도 옥탑에서 뛰어 놀았던 기억은 소중히 간직하고 있겠지. 다음엔 마당있는 집에 가서 산책냥이 도전해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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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짱은 귀신처럼 우리의 위치와 몸짓을 파악한다. 눈이 안보이지만, 눈이 있는 것 처럼 고개를 움직인다. 내가 다가가면, 내 얼굴을 본다. 어떻게 아는 걸까? 예를들면, 좀 거리가 떨어진 탁자에서 앉아서 컴퓨터로 무언가를 하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서, 소리짱을 바라보면, 소리짱도 그것을 알아채고 나를 마주 본다. '에? 나 지금 소리 안냈는데? 어떻게 알지?' 마치 눈으로 보고 있는 것 처럼, 귀신 같이 알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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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가 엄청나게 좋다고 하는 고양이는, 원래부터 시각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의사선생님이 말했었다. 시각은 보조적이고, 주 감각은 청각과 후각이라고 들었다. 후각은 물론 좋을테지만, 소리짱의 반응은 그야말로,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호기심이 든 나는 소리짱의 반응과 나의 행동 사이의 관계를 집요하게 관찰해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름의 가설이 세워졌다. 관절 소리와 숨 소리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예를들어, 내가 소리짱에게 손을 내밀었다고 하자. 고양이 인사를 하려고, 조금 떨어진 거리에 쭈그려 앉은 상태에서 손을 내미는 동작을 했다고 하면, 소리짱은 손 끝을 바라본다. 그 때 내가 검지 손가락을 살며시, 구부리면, 검지손가락을 주목한다. 어떻게 가능할까? 검지손가락을 구부리는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닐까? 관절 연골의 마찰음 같은 것이 들리는 게 아닐까? 멀리서 떨어진 상태에서 고개를 돌린 것은 어떻게 알아채는 걸까? 나의 코에서 숨소리가 나는데, 이 소리는 어떤 지향성 스피커와 같이, 나의 안면에서 반사되어서 반향을 만들기 때문에, 소리짱에게는 내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서, 음량이 달라지는 현상이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이 스피커-얼굴을 돌려서, 소리짱을 향하게 되면, 소리의 에너지가 높아져서, 자신이 주목받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소리가 아무리 작아도, 그것이 직접적으로 전해져 오는지, 반사되어서 돌아오는지는 큰 차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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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짱의 앞에서 화려하게 움직이다가, 어느 순간 몸의 모든 기관을 멈춰보았다. 이때, 반드시 숨도 참아야 한다. 가능하면, 심장도 조용히 뛰게 해야 한다. 관절 하나도 움직이지 않도록 한다. 그러면, 소리짱이 흥미를 보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존재가 사라지는 순간. 분명히 있었는데, 없는 것 같네? 어디갔지? 하고 가까이 온다. 이때, 내 손의 마지막 위치에 대한 기억이 헷갈리고, 손의 위치를 예측하지 못해, 살짝 닿거나 한다. 나는 마음 속으로 '아니, 이 정도로 가까우면, 냄새로 알아야 하는 거 아냐?' 라고 생각하지만, '으, 더이상 숨 참을 수가 없다.' 우리는, 이런식으로 소리-투명인간 놀이를 하고 노는 것을 한동안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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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짱에게 존재는 어떻게 생겼으며, 어떻게 들려올까. 나의 손과 나의 목관절과 나의 발자국 소리가 한 사람의 것이라는 걸, 하나의 존재에서 유래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깨닫게 될까? '까마귀 날자 배떨어진다.' 가 아니라, 까마귀와 배가 세포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덩어리라는 걸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시각은 소리없는 연결을 파악할 수 있다. 청각으로는 연결된 몸을 파악할 수 없는 게 아닐까? 그러면, 소리짱에게 내가 걸어오는 모양은 시끄러운 양철 로봇트 처럼 팔다리목가슴발이 치렁치렁 거리는 소리나는 여러 군집이 무섭게 다가오는 것과 같이 보이는 건 아닐까? 어째서인지 저 소리들은 함께 움직이긴 하는데, 왜 손을 물면, 위에있는 항상 떠드는 입이 어딘가 아픈 듯이 소리를 낼까. 오늘 나에게 맛있는 참치캔을 준 손이 고맙긴한데, 버릇없이, '맛있냐? 고맙지?'라고 말하는 저 입은 항상 떠들기만 하는 주제에, 나한테 무슨 고마워 할만한 일을 했다고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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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짱의 청각 테스트는 언제나 재미있다. 모든 고양이들 놀이의 기본은 움직이다가 멈추는 것이고, 사물이 보이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인간 어린이 두 살도 같은 식으로 놀아주면 된다. 숨겼다가, 보여주기. 소리짱의 경우에는 소리를 숨겨야 한다. 소리를 내다가 안내면 된다. 소리짱은 소리가 나는 장난감을 좋아한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소리짱이 특별히 더 좋아하는 장난감은 원래 소리를 내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은 것들이다. 방울 이런거 달린것도 좋아하지만, 어느정도 하고 나면, 그런 것들은 금방 싫증이 난다. 소리가 너무 잘 들려서, 재미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막대기 끝에 작은 털뭉치가 달린 장난감이 있는데, 원래는 물고 빠는 장난감이지만, 이걸로 장판 바닥을 긁어주면, 사-악 사-악 하는 미세한 소리가 난다. 여기까지는 사람귀에도 들리지만, 그런 다음에 그것을 그냥 제자리에서 천천히 회전을 시킨다. 그러면, 우리는 듣지 못하는 아주 더 미세한 사-악 소리가 아마도 들리는가 보다. 소리짱은 이 소리를 아주 흥미롭게 듣는다. 분명히 소리가 작다는 것은 소리짱에게는 존재자체가 작다는 의미일 것이다. 파리가 앉아서 손바닥을 비비는 소리 같은 것은 자신보다 약자라는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지도 모른다. 만만하게 보인다. 그러면, 사냥하기 위해, 아주 사뿐사뿐 걸어온다. 암살자. 잠자리도 파리도 소리짱이 다가오는 걸 잘 파악하지 못한다. 눈이 없었다면, 나도 똑같이 파악할 수 없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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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짱이랑 놀아줄때, 함께 눈을 감고 놀면 좋을 때가 있다. 시각이 없는 소리짱에게, 시각은 일종의 '반칙' 같은 것이다. 소리짱은 자신의 위치를 숨기고 싶어한다. 조용히-, 조용히. 그렇지만, 나에게는 너무 쉽게 잘 보인다. 그럴때, 덥썩하고 소리짱을 잡는다거나 하면, 자존심 비슷한 것이 상하는 것 같다. '아, 보는 게 어딨어!' 짜증낸다. 시각을 가지고 자기를 만지는 손은 굉장히 무례한 손일 수가 있을 것도 같다. 눈이 잘 보이는 고양이에게 다가갈때도, 손을 고양이 얼굴 모양으로 해서, 얼굴비비기 인사를 하면서, 몸을 만지기 시작하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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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짱은 놀이를 잘하고 싶어서, 많은 노력을 한다. 내가 장난감을 이리저리 옮기다가, 멈추면, 마지막으로 소리가 난 위치를 주목해서 보고 있다. 공격하려고 자세를 잡기는 하는데, 곧 자신감이 없어진다, 저기 쯤에 있는데, 소리짱은 공격을 거는 순간 도망갈 수 있는 사냥감을 완벽하게 사로잡기 위해, 한번에 뛰어서 정확하게 사냥하겠다는 높은 이상 속에서, 공격의 시공을 가늠한다. 조금이라도 자신이 없다면, 다음 기회를 노린다. 아주 신중한 사냥꾼이다. 소리짱은 가까운 거리에서는 굉장히 정확하게 추적해오기 때문에, 장난감을 멈추고 있을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시각을 사용해서, 소리짱을 여유롭게 가지고 놀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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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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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짱은 시각이 없다는 핸디캡을 가지고, 나와 경쟁하기 때문에, 어느 순간 재미가 없어져 버리고 마는 것 같아 보인다. 자존심이 탁 상할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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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안,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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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늦은 것 같지만, 마지막 한 판은, 눈을 감고 게임에 참여해 본다. 내가 눈을 감으면, 우리는 동등해진다. 장난감을 흔들다가 바닥에 내려놓는다. 귀를 쫑긋 세워서 소리짱을 들어본다. 아무것도 들을 수가 없다. 숨을 죽이며, 포식자 앞에 놓인 어떤 작은 벌레의 심정을 떠올린다. 하늘에서 독수리처럼 나꿔채가는 그 포식자가 다가오는 소리를 아직 듣지도 못했는데, 내 몸은 그의 발톱에 어느새 찢겨져 있는 것이다. 으아. 눈을 감고 있으면, 소리짱이 다가오는 걸 전혀 파악할 수가 없다. 나는 시각이 없는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는 감각을 갖지 못한, 소리적으로 열등한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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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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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가 들면서, 부딪히는 것을 조금 신경쓰기 시작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여기에는 몇번의 사건들이 계기가 되었을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탈리아에 여행 가서 사왔던 예쁜 찻잔이 테이블 위에 있었는데, 소리짱이 테이블 위로 돌아다니다가, 부딪혀서 떨어뜨려서 산산조각이 난 적이 있었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소리짱 정말 밉다고 나무랐다. 고래-고래-고래-고래-. 그런다음에는, 삼각형과 네모가 그려진 또 다른 예쁜 찻잔을 비슷한 방식으로 깨서 잃어버리게 되었는데, 애초에 테이블에서 떨어지기 쉽게 놓았던 것도 잘못이었지만, 흠. 나는 잘 탓하는 사람이었다. 너 때문이야. 너가 책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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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다보니 그랬을까, 소리짱이 좀 위축된 걸까. 지금도 생각하면 속상하지만, 뭐 이미 벌어진 일을 어쩌겠나. 누구라도 탓하고 싶은 심정인 내 자신의 우울이 소리짱에게 씌워진 상황과 같은 것이다. 누구라도 탓하지 않으면, 누구라도 희생시키지 않으면 안될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내 안에 배긴, 어떤 자국, 어떤 상흔이 지금도 아주 다 낫지 못했다는 것을 계속해서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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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짱은 새 소리를 좋아한다. 곤충들이나, 잠자리들은 잡고 사냥하는데, 새는 사냥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시력이 없어서, 공격력이 부족한가? 남들은 고양이가 참새를 죽여서 물고 온다고 하던데, 소리짱은 아직 그런 적은 없다. 그래서, '아, 새를 못 잡는가 보다, 소리짱 입장에서는 아쉬울 지도..'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사실, 소리짱을 곁에서 지켜보면, 꼭 새를 잡으려고 한다기 보단, 그저 엄청나게 관심이 있어한다는 것이다. 사다리에 올라가는 것도 그렇고, 담에 올라가는 것도 그렇고, 새들에게 가까이 가려다가 벌어진 상황인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런데 새들도 소리짱을 보러 일부러 찾아오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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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짱의 첫번째 집이었던 옥탑은 새들이 들르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소리짱이 밖에 나가서 바람을 쐬고 있으면, 새들이 찾아온다. 가만 들어보면, 새들이 무언가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이 들리기도 한다. 울음소리가 구분이 갈 정도로 자주 찾아오는 새가 있는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소리짱은 방안에 있다가도 갑자기 우다다다-쿵 하면서,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한다. '쿵'은 소리짱이 어딘가에 머리를 부딪히는 소리다. 아이고, 부딪히지 말고 다니라고 외치면서 따라나가 보면, 사실 밖에 친구 새들이 찾아온 경우가 종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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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번째 집은 옥탑이었지만, 특이하게도 담장이 45도 정도 안쪽으로 기울어져서 건축이 된 옥탑이어서, 뛰어오르지 않는 이상 소리짱이 밖으로 떨어질 일은 없어 보였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곧잘 따라나가서 담배라도 피고 들어오곤 했었는데, 이사를 하고 나서, 두번째 집은 옥상이 개방되어 있기는 했지만, 말 그대로, 건물의 옥상일 뿐이어서, 담장이 낮고 위험하게 되어있었다. 소리짱은 어릴때부터 줄 곧 밖에 나가서 속풀이를 하고 노는 것을 즐겼기 때문에, 밖에 못나가게 하면, 아주 불만이 폭발을 했다. 밖에 나가게 해주면, 우리들과 거리도 생기고, 본인도 스트레스를 잘 풀고 들어오는 것 같았었다. 그러던 어느날 마침내 소리짱이 옥상에서 사라지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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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두번째 집은 2층 짜리 단독주택이지만, 옆에 있는 건물들이랑 옥상이 연결되어 있어서, 소리짱은 담장 위에 올라가면, 옆 건물 옥상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오해를 불러일으켰던 것일까. 옆에 건물의 옥상으로 연결되는 담장도 있지만, 아무것도 연결되지 않은 담장도 있는 것인데, 그정도는 파악할 수 있을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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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이었던 것 같은데, 모처럼 봄바람이 불어서, 창문도 열고, 옥상문도 열고 환기를 하고 있었다. 옥상문이 열리니까, 기다렸단 듯이 소리짱은 옥상으로 출타를 하셨다. 한시간 쯤 지나면, 어지간히 돌아와야 하는데, 오늘은 유달리 돌아올 기미가 안보이는 중이었다. 예감이 안좋다면서, 원정씨가 옥상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당황하며 말했다. '소리짱이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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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일단 옆 건물로 넘어간게 아닐까 생각했다. '가지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어디 멀리 갔는가보다.' 그런데, 조금있다가 원정씨가 나를 불러서 담장너머로 길가를 가리켰다. '쟤, 소리짱 아냐?' 여기는 2층 짜리 단독주택이니까, 실질적으로는 3층 높이다. 안경을 고쳐 쓰면서, 유심히 관찰했는데, 검은 동그라미가 길가에 구석에 또아리를 틀고 앉아있었다. 우리는 뛰어 내려갔다. 소리짱은 너무 놀라있어서, 우리를 알아보지도 못하는 것 같았고, 당황해서 정신이 나가있는 것 같았다. 우리 집은 차들이 쌩쌩 달리는 큰길가에 있어서, 소리짱이 놀라서 달아나다가 찻길에 뛰어들면 큰일이 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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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정씨가 소리짱을 설득하는 척을 하다가, 덥썩 안았는데, 무서워하는 소리짱은 움켜쥐다가, 손톱으로 원정씨 등에 상처를 내고 말았다. 소리짱을 가까이서 보니, 턱을 바닥에 부딪혔는지 피를 흘리고 있었다. 바로 그 상태로 소리짱을 데리고, 걸어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치료를 받았는데, 다행히 한쪽 어깨를 한동안 절뚝거리는 것 외에는 큰 문제는 없었다. 천만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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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고양이는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별로 다치지 않는다고 하지만, 눈이 안보이는 고양이는 예외다. 눈이 안보이기 때문에, 땅에 닿는 순간, 고양이 특유의 고양이 낙법을 시전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리짱도 어릴때, 내 어깨에서 무작정 바닥으로 뛰어내린적이 있었는데, 그 때의 모습이 마치 날다람쥐 처럼 네 다리를 활짝 펴고, 충격에 대비하는 모습으로 뛰어내렸고, 결국은 바닥에 속수무책으로 부딪히면서 턱을 찧는 것을 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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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그러고 나서 한동안은 소리짱도 밖에 나가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상처가 다 나아가자, 어김없이 또, '문을 열어라!', '지금 당장 밖에 나가야겠다!' 호통을 치기 시작해서, 집사의 철저한 동행을 전제로 산책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했다. 전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자유롭게 보낸다던가, 이런것은 더이상 없고, 산책에 동행하는 우리들도 한시간이고 마냥 옥상에 앉아있어 줄 수는 없기 때문에, 간단하게 바람을 즐기고, 새들과 담소는 할 시간이 없이, 서둘러 들어와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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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짱도 예전보다는 호기심을 스스로 억제하고, 바람만 조금 세게 불어도 이내, 실내로 들어오려고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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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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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짱과 나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이 있다. 그건, 녀석이 기여한 부분도 있고, 내가 기여한 부분도 있다. 어쨌든, 우리가 그런 상황을 함께 만들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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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와 집사라는 프레임에서는 귀여운 고양이가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오직 집사의 잘못으로만 몰아가려는 경향이 있다. 고양이는 지능 발달이 인간으로 치면, 두 살 반에서 멈춘다고 한다. 처음으로 찾아갔던 동물 병원의 원장 선생님은 소리짱을 '아가'라고 부르셨다. 그리고, 나는 그 아가의 보호자였다. 고양이든 강아지든 반려동물로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고 하면, 그 문제는 일방적으로 우리 인간들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본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어딘가 좀 불만스러운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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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생 때였나, 아파트에서 살던 나는 집에 혼자 있다가 부모님에 대한 분노에 크게 사로잡힌 적이 있다. 아니, 그게, 시작부터 화를 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지금 기억하고 있는 사건은 이런 것이다. 나는 뭔가 초조하거나, 기분이 상한 부분이 있었는데, 부모랑 있었던 어떤 사건에 대해서, 그것을 되새겨 가면서 혼자, 생각에 잠겨 있는 중이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안방에 6칸 짜리 목재 서랍장을 한 서랍씩 열어재꼈다가 다시 밀어넣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바퀴가 달린 고급서랍장은 스르르- 미끄러지면서 열리고, 마지막까지 열리면, 멈춤 턱에 걸리면서, 탁-하고 멈추고, 마찬가지로 밀어 넣을때도 부드럽게 미끄러져 들어가서 큼-하고 닫히는 그런 서랍장이었다. 나는 도저히 용서하지 못할 그 어떤 사건을 떠올리면서, '그 불합리한 사건', 하고 서랍을 열고, '그 부당한 언사', 하고 서랍을 닫고, '그 부당한 체벌', 하고 서랍을 열고, '그 부당한 표정!', 하고 서랍을 닫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생각하면 할 수록, 화가 치솟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서랍에 가하는 힘을 주체할 수 없게 되고, 마침내는 서랍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고리가 달린 앞부분이 뜯어져 부서져서 버리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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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급서랍장이라고 해봤자, 겉보기만 그런 것이지, 결국은 타카심으로 대충 조립된 서랍이어서 충격을 받자 타카심들이 숭숭 전부다 빠져버린 것이다.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지만, 오히려 극단적으로 냉정해진 나는 즉시 신발장에서 망치를 가져다가, 빠진 타카심들의 위치를 살살 맞춰가며 조심스럽게 다시 박아 넣으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콩콩콩-. 하지만, 그렇게 쉽게 고쳐질 일이 아니다. 아-씨. 짜증이 난다. 이것은 내가 알기로는 엄마 아빠의 혼수로 구입한 장롱과 서랍장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짜증이 더 난다.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지? 하는 생각이 울컥하고 밀려온다. 망치를 두드리는 힘을 또 조절을 못하게 된다. 울화통이 터진다. 왜 안되니, 왜! 하면서, 서랍을 패기 시작했고, 손이 얼얼해져서 망치를 떨어뜨리고, 바닥에 주저 앉았을때는, 그 서랍은 망치질로 흉칙하게 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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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그 서랍장은 부모님 댁에 있다. 부모님은 그 서랍장이 왜 그렇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 단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당시에 나는 이제 크게 혼이 나겠구나, 각오를 하고 있었다. 이런 일을 저지른 나에 대해서 이제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기왕 이렇게 됐으니, 지금까지 말 못한 억울한 것들에 대해서 말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해야겠다고 두려움을 억눌러가며 다짐했다. 그런데, 정작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없던 셈 취급을 당하니, 그건 더욱 더 속상했다. 왜 적어도 '너가 그랬나?' '왜 그랬나?' '어쩌다 그랬나?' '뭐가 그렇게 화가 났나?' 이런 이야기 걸어오지 않는 걸까? 그 이후, 며칠동안 망치질 자국으로 뒤덥힌 서랍을 혼자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나는 결심하게 된다. 나도 그것에 대해서 다시는 말하지 않겠다고. 우리 사이의 골은 그렇게 한번 더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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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냉정하게 따져본다면, 내가 먼저 사과했어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 내가 그랬어야 한다기보다는, 그럴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하는 것에 대해서 이제껏 생각도 해보지 못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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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날 갑자기 부서진 서랍장은 아마도 알고 계셨겠지만, 내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 부분은 미안하게 생각한다. 관련된 책임을 질 의사가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 사건 이전에 있었던 어떤 사건에 대해서 분개한 나머지 벌어진 일인데, 지금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를 받고자 한다. 그렇지 못하면, 나는 영원히 당신들을 용서하는 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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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도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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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나름대로 많이 노력해서, 위의 어색한 가상의 사과문을 작성해내긴 했는데, 역시 이건 아니구나 싶다. 사과를 하고 있는 건지, 고소를 하고 있는 건지 헷갈린다. 결국은 당신을 용서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지 않는가. 아아. 보복이란 없다. 폭력은 폭력일 뿐이다. 나는 아직 준비가 안되어있다, 사과할 준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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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인지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폭력은 연쇄되는 것'이라는 이야기. 그것을 어떻게 좀 해야 한다. 폭력은 연쇄되는 것이 아니다. 혹은, 아니어야 한다. 폭력 사건은 하나의 단절된 '의지'이자, 매 순간의 고유한 선택이다. 따라서, '보복'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또 다른 폭력이 존재할 뿐이다. 혹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내가 이 굴레를 벗어나갈 수 있는 방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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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짱과 나 사이에 있는 팽팽한 긴장감이란 것도 아마 그런 것이다. 그땐 그랬었다. 나는 소리짱을 이해할 수가 없었고, 소리짱도 마찬가지였다.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어서, 내 손과 팔을 피가 나도록 물어 뜯었다. 물고, 또 물고 계속 물면서, 더 화가 나고, 더 억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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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수의사 선생님한테 소리짱이 너무 물어서 힘들어요. 그리고, 그게 같이 사는 원정씨 손은 안물고요, 저의 손만 골라서 물어요. 인터넷에서 찾아보니까, 손으로 놀아줘서 그렇다고는 하던데, 그것은 제가 잘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되나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명언을 하셨는데, '소리짱한테, 밑 보였나봐요.' 라고 하시면서, 웃어넘기기만 하셨다. 아, 그러니까, 서열에서 자기보다 밑에 서열인 존재로 파악한 듯하다고. '네?...' 뭐라고 해야 할지,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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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그럴 수도 있다. 원정씨를 향해서는 어떤 존경의 태도를 보여주는 편인데, 나한테는 뭔가 자신이 우위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자꾸 물리는 것 때문에, 나는 사실 소리짱이랑 더이상 같이 살 수가 없을 정도가 되어가고 있었다. 화가 너무 나기 시작했다. 물 때, 목 뒷덜미를 잡아서, 떼어서 바닥에 내려놓아주는데, 목을 내가 풀어주자 마자, 다시 달려들어서, 하이에나 처럼 물어뜯는다. 그러면, 어느 순간 분노조절장애에 걸린 나는 소리짱을 들어서 바닥에 집어 던져 버린다. 그러면, 소리짱은 나에게 당한 폭력을 기억하게 되어서, 다음번에 물기 시작했을 때는, 다시 그 기억에 사로잡힌 듯이 더 가혹하게 나를 물어 뜯게 되고는 한다. '절대로 반격하지 말 것.' 이라는 주의를 블로거 선생님들로 부터 받는다. 나는 이렇게나 억울한데, 반격을 하면 안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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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초에, 왜 그렇게나 물었을까. 이유는 있었을 것 같다. 처음하는 집사가 지식도, 성실함도 그럭저럭이다보니, 무언가 소리짱을 화나게 하는 실수를 범했을 것이다. 그런게 한둘은 아니겠지. 아마도 소리짱은 그것에 대해서 나와 제대로 소통할 수가 없었다. 불만은 가슴 속에 쌓여있지만, 표면에 드러나지는 않고 있었다. 오히려, 그 날도 처음에는 내 옆에 앉아서 행복한 기분을 느끼면서 그릉그릉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쓰다듬어주는 내 손을 살짝 물었을 뿐인데, 갑자기 그동안 쌓였던 불만이 폭발하면서 분노에 사로잡히면서, 이성을 잃고, 오로지 나를 물어 뜯는 것 밖에는 생각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마치, 내가 서랍장을 열고 닫다가 정신줄을 놓고, 서랍장을 때려 부수게 되었던 것 처럼. 나는 웬지 두가지 사건이 닮아있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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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소리짱에게 폭력을 쏟아내는 모습을 본, 원정씨는 맹 비난을 했다. 나는 폭력적인 인간으로서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 때부터, 나는 일종의 격리에 들어갔다. 나는 소리짱이 다가오면 완전히 도망을 가기로 했다. 서로 모르는 고양이, 모르는 사람이 되자. 절대로 만지거나 몸이 닿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건 마치 내가 부모님에게 취했던 조치와도 흡사한 것이다. 관계의 문을 닫아버리는 것. 그러자, 소리짱은 원정씨에게만 갈 수 있었고, 관계할 수 있게 되었다. 원래, 소리짱은 원정씨와는 다소 격이 있는 관계를 즐기는 편이고, 나와는 격식없이 감정을 쏟아내는 관계를 해왔었다. 긍정적인 감정도 많이 쏟아내곤 했었는데, 이제 내가 없어지고 나니까 머지 않아, 원정씨한테도 감정을 쏟아 놓으면서 무는 일이 생기게 되었다. 아직, 나를 물던 만큼, 세게 무는 것은 아니었지만... 소리짱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물지 않게 하고, 물려고 할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연구하며서, 소리짱을 가르쳐 보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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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짱과의 관계는 대충 몇번의 계기를 거치면서, 달라져온 것 같다. 최초에는 '친구'였다. 나는 친구, 소리짱이 너무 좋고, 나는 좋은 친구가 되고 싶었다. 두번째는, '동물'이었다. 나는 친구가 될 수가 없다. 너는 동물이고, 자신의 욕구 밖에는 모르는 존재이고, 나도 같은 동물이고 우리는 물고 뜯고 싸운다. 폭력이 오가는 시기가 이 시기에 걸쳐있었다. 세번째는, '단절'이다. 그리고, 나는 내 자신의 폭력성에 대해서 재고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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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력은 소리짱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기도 하다. 소리짱은 이제 원정씨한테도 물지 말것을 강하게 주의를 받게 되었고, 나는 내심, '거봐라, 소리짱. 쌤통.' 이렇게 생각했지만, 결국은 소리짱의 입지가 없어져서, 안타까왔다. 이제 '존경하는' 원정씨한테도 주의를 받고, 혼나니까, 속상하겠구나. 소리짱도 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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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대로 반격하지 말것'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내 자신의 아주 오래된 정체성을 깊이 재고해야했다. 복수자. 이것은 지금도 계속해서 진행중이다. 지금 이 글을 써내려가는 동안에도. 폭력에 폭력으로 대답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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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짱과 나 사이에는 남들은 잘 모르는 팽팽한 긴장이 있다. 그건 마치, 내가 부모님댁에 한달에 두어번씩 찾아갈 때, 미세하게 떨리는 긴장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아직 용서하지 못했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했다. 아버지의 나이가 팔십을 넘었고, 소리짱도 이제 네살반이다. 나는 더 늦기 전에, 이 팽팽한 긴장을 조금이라도 해명할 수 있을까.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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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육개월은 계속 소리짱을 피해다녔던 것 같다. 소리짱은 귀엽기 때문에, '물지만 않으면!', 폭력의 기억이 조금 멀어지자, 어느 순간 다시 소리짱을 쓰담쓰담하기 시작했다. 소리짱도 조금은 어른스러워졌다. 다만, 아무것도 해결이 안됐는데, 우리는 그냥 이 모든 폭력들을 다시 묻어 버리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안타까운 우리의 가족사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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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짱,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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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로는 사과하긴 했다만, 말이 안통하는 소리짱에게 말로 사과한다는 게 어떤 의미일지는 모르겠어서, 허공에 던지는 것 같이 내 목소리는 던져지고 있었고, 소리짱은 무슨 일이있었다는 건지, 도대체 모르겠고, 아랑곳하지 않는다면서, 오랜만에 내 무릎에 자기 얼굴을 비벼대며 좋아하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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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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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짱이 먼저 시작한 것 같기는 하다. 한 두살 조금 지날때쯤이었을까? 어느날 문득 소리짱이 냐-옹, 냐-옹을 조금 이렇게 저렇게 연습하는 듯하더니, 뭔가 사람이 말을 하는 것 처럼 들린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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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지금 이거는 뭔가, 우리한테 말하는 것 같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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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히, 사람의 말을 따라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원정씨와 내가 주고 받는 대화를 하루종일 듣다보니, 뭔가 느끼는 게 있었던 걸까? 어떤 감정을 담아서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는, 환청 같은 것이 들리는 듯 느껴지기 시작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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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집에 왔으면, 밥부터 줘야지, 이제 들어와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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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박타박 거릴 때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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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나 힘들었다. 너넨 밖에서 잘지냈고? 하. 기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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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털썩 주저 앉을 때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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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내 말이, 이야기 하잖아 내가, 너무 심심하다고, 지금, 집에서 하루 종일 있는 거. 뭔가 냥 복지 아이템 이런거 하나 들일 생각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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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목조목 따질때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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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은 그냥 수다쟁이의 수다를 떠는 것 같기도 하다. 특별히, 뭘 어떻게 해달라는 건 아니지만, 이야기하는데 재미라도 붙였는지, 자꾸 뭐라뭐라 하네. 그러면, 나도 나름의 대답을 한다. 환청으로 들린 이야기에 대답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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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 그래, 그거 쫌 있다가 준다. 집에 와서 바로 밥 주면, 백발백중 허겁지겁 먹다가, 토하니까. 니가 밥 생각 고만두면, 그때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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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 뭐 잘 지냈는데, 왜 힘드나? 어디 아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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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니까, 캣타워 알아보고 있기는 한데, 너무 비싸가지고, 하나 만들까? 하다가, 이 모양이네. 원정씨가 만들어 준다고 했으니까 기달려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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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냥 내용없이 대답이 가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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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냐-, 냐아..., 냐-라라라 압! 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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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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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소리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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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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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고, 한번 대답해주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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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감정이란 것이 들리니까, 감정만 담아서 대답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 머리를 쓰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대답이 가능하다. 무한정 수다를 떠는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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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짱이랑 함께 지내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일단, 내가 동물이라는 것이다. 인간이기 이전에, 혹은 인간이면서, 혹은 인간이라는 사실이 말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내가 소리짱과 같은 동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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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가를 유투브 보고, 좀 따라해보고 있는데, 다운-독, 이란 자세가 있다. 처음엔, 솔직히 조금 부끄러웠달까, 아래로 향하는 개의 자세라는 것을 한다는 것이. 그런데, 유투브 동영상을 틀어놓고, '다운-독!' 이라는 선생님의 외침에 '발바닥, 아래로, 꾹!' 이라는 선생님의 단호한 라임에 부들부들 따라하는 나를 무슨 테레비 보듯이 바라보는 것을 소리짱은 꽤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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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왔네, 또.. 놀리려고 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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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짱은 '다운-독' 너무 잘한다. 자다 일어나면, 으레 '다운-캣' 스트레칭으로 어깨와 허리를 쫘-악 펼쳐주시는데, 너무나 시원해 보인다. '나도 동물로서 질 수 없지' 하고 생각하면서 조금 더 발바닥을 꾹 눌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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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내가 개랑 같다는 점에 있어서, 부끄럽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럼 뭐였을까? 인간은 개보다 나은 존재, 우월하거나, 상위의 존재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사람에게 개라는 것은 많은 경우, 좋은 소리가 아니다. 개-새끼라고 한다거나, 개-같은-자식. 근데, 개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이제는 다운-독 자세가 부끄럽지는 않다. 다만, 부러울 뿐이다. '독'(dog)들이, 그리고 소리짱의 냥-스트레칭이. 생명체로서, 존경스럽다. 나도 노력하면, 너처럼 될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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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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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ck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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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스팔트 위에서 녹아내리는 얼음처럼, 이라고 말했다. 어느, 산후조리운동 유투브에서 나온 표현이었다.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녹아내리는 얼음이라니, 내 허리가, 내 골반이 지금 이 매트리스 위에서 녹아 흘러 내리고 있다. 그것이 어찌나, 평화로운 장면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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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런 고민도, 의식도 없다, 얼음이 된 나는 나를 의식하지도 않는다, 사고하지도 않는다, 다만, 관망하고 있을 뿐이다. 얼음은 녹아내리고, 그것으로 끝이 난다. 더이상 어떤 고민도, 어색함도, 불안도 가질 수 있는 '의식'이란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존재. 사물. 무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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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나는 아스팔트가 따뜻하다는 것을 감각하면서, 녹아내린다. 감각할 '정신'이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데, 왜 온기 만은 감각한다고 상정하고 있을까. 신기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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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짱,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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