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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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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사는 고양이의 이름은 '소리'라고 한다. 하지만, '소리야' 하고 부르는 일은 평생 거의 없었고, 언제나 '소리-짱' 이라고, 짱즈케를 한다. 이름을 갓 지었을 때는, '소리-이!', '소리-야!' 하고 불러보기도 했었는데, 자꾸 첫음절에 강세가 붙어서, '소리'가 '쏘리'가 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면, 영어로 '미안해, 유감이다'라는 의미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그런 발음을 피하려고 하다보니, '소리짱'이 된 것도 있다.
'이름을 잘못지은 것 같아. 이름을 바꿔야겠어!'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동물병원에도 그렇게 등록했고, 주변 사람들도 다들 그렇게 알고 있어서, 사태가 커져버린 상황이었다. 막상 다른 이름을 생각해내서, 연습을 해보아도 '소리'라는 이름으로 돌아와버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실, 그런 의미론적인 생각들은 우리들의 머리속에서만 일어나는 것이지, 소리짱은 그다지 상관하는 것 같지 않았던 것도 한 몫했다.
'인간. 이름같은 건, 한번 정했으면, 끝이야. 뭘 또 왜 바꾸자는 거야, 독재 인간 정부 물러가랏!'
인간들이 자기 편하게 붙인 이름이 인간들의 언어로 무슨 의미를 가지던 그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소리짱'에게 '소리'라는 음향은 어떤 호출-소리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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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짱을 만난 것은, 2015년 10월 말, 문래동 기계공장들이 밀집된 지역에서, 어느 한켠에 있는 창고를 작업실로 쓰고 있었던 시절의 일이었다. 겨울이 오려는가 바람도 세차고, 제법 쌀쌀한 날이었다. 작업실에는 화목난로가 있었고, 장작을 두어개 태우면서, 온기를 가늠하고 있었다. 작업실로 사용하던 창고는 큰 길가에 나온 점포들의 뒤켠에 있었기 때문에, 점포들의 사잇길로 한 번 들어오는 좁은 골목길을 지나서 들어오게 되어있었다. 이 좁은 골목길에는 작업실 공간 외에, 사람들이 사는 집들도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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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아마도 어딘가에 가볍게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는가 보다. 흐린 날씨에 늦은 오후 햇살이 골목길에 내려앉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어떤 작은 생명체가 비명에 가까운 울음을 내뿜고 있었다. 손바닥만한 작은 고양이가 텅 빈 골목길을 향해서, 텅 빈 하늘을 향해서, 찢어지는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우리는 말을 걸었다,
"안녕, 너 괜찮니?"
그 작은 고양이는 얼굴이 망가져있었다. 우리가 있는 것을 알기는 하는 것 같은데, 대답이나, 태도에 변화가 없다. 아니, 어쩌면, 우리를 향해서, 고함을 치기 시작한 것 같기도 하고.
"지붕 위에서 떨어져서 다쳤나봐. 어떡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네, 일단 작업실에 들어가자. 엄마 고양이가 올 수도 있고 하니."
작은 몸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골목이 쩌렁쩌렁하게 울려서, 누가 와도 벌써 왔어야 할 것 같은데, 엄마 고양이는 다른 사정이 있는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따듯한 작업실에 들어와 앉아서, 그 울음 소리를 듣고만 있자니, 우리들도 안절부절이었다. 나는 계속 망설이고 있었던 편이었는데, 원정씨는 참다 못했는지, 셔터 문을 열고, 다시 골목길로 나가서 소리나는 쪽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다시 그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나도 놓치지 않고 뒤를 밟았다.
"우리 작업실에 갈래?"
그 친구는 그 말을 듣기도 전에 이미 마음을 정한 것만 같이, '나를 구해줘.' 아니, '나를 구하라!' 라고 명령하듯이 우리들에게 외치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약간의 손짓과 몸짓을 써서, '우리를 따라와' 라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자, 그 생명체는 작은 몸뚱아리에 붙어있는 곧 부러질 것 같은 네 개의 다리를 바닥으로 거칠게 내동댕이치면서,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집요하고, 단호한 걸음을 딛어 가면서, 우리의 뒤를 따라 들어왔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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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에 들어와서도 광기는 한동안 가라앉지 않았다. 쌩쌩불던 바람은 피하는데 성공했지만, 돌바닥이 차다. 뭔가 따뜻한 담요 같은 것을 차가운 돌바닥에 깔아주었다.
"이쪽으로 와 봐."
온기가 남아있는 화목난로 옆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지만, 담요는 거절당했다. 다만, 화목난로는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난로의 온기가 머무는 공간의 한 모서리에 병든 병아리처럼, 엉거주춤하게 멈춰서서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마침내, 정적이 찾아왔다. 세상도 한숨을 내리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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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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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키워본 적은 없었지만, 예전 작업실에서 같이 작업실을 쓰던 분이 기르던 고양이가 두 마리 있었다. 그 고양이들도 손바닥만큼 작을 때 부터 길러졌는데, 몇번 주인분의 부탁으로 돌봐준적이 있기는 했었다. 이제는 베테랑 캣맘이 되신 그 분께 긴급연락을 취해서,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구했다. 만화책에서 본 대로,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서, 먹으라고 줬는데, 냄새만 맡고 먹지는 않는다. 다만, 화목난로 옆에서 오똑이처럼 서서 쉬고 있는 소리짱은 이따금씩 웅크린 몸의 균형을 잃는 듯한 동작을 했다. 지금 비틀거린건지, 아니면 꾸벅하고 졸고 있는 건지 잘 가늠할 수가 없었다.
일단, 얼굴 한 쪽이 상처 딱지 같은 것으로 덮여있어서 치료가 시급해 보였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동물병원을 수소문했다. 베테랑 캣맘 지인의 추천으로 소개 받은 동물병원에서는 길냥이를 인보하는 조건으로 치료비와 수술비를 크게 할인해주셨다. 여기서 '수술' 이란, 안구적출 수술을 말하는 것이었다. 소리짱은 허피스 바이러스 감염이었는데, 이를 눈치챈 어미고양이가 다른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무리로부터 밀어내어 버린 것이라고 의사선생님은 말했다. 게다가, 발견된 시기에 이미 한쪽 눈은 실명한 상태였고, 나머지 한쪽 눈도 백내장이 심하게 온 상태여서, 조금이라도 시력을 살릴 수 있을지, 약을 써서 치료해 보겠노라고 하셨지만, 며칠 후, 전화로 상태가 악화되어서 나머지 한쪽 눈도 수술할 수 밖에 없다고 하셨다. 그렇게, 갑자기 소리짱은 시각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때, 우리는 '소리'라는 이름을 마음속으로 정하고 있었다. 소리짱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줄 존재의 이름,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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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짱의 병원비는 소리짱이 받은 치료의 내용에 비하면, 정말 저렴한 금액이었지만, 아무 계획도 없이 이 상황을 맞닥드린 우리에게는 상당히 부담이 되는 지출이었다. 고민끝에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모금활동을 하게 되었다. 지출한 비용의 일부분만이라도 후원 받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소식을 접한 많은 분들이 너도나도 큰 후원금을 보내주셔서, 순식간에 전액이 모금되어버렸다. 정말 여차하면 원래 지출한 액수보다도 더 많이 모일 위기에 빠질 뻔 했다.
'오, 소리짱, 축복받았네.'
수많은 이모, 삼촌들이 작업실을 찾아와서, 맛있는 것들과 선물들을 남겨주고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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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길고양이를 보면,
'오, 이쁘다, 우리 집에 갈래?' 하고 추파를 던지면서, 다녔던 나였지만, 이렇게 소리짱을 갑자기 책임지게 되니, 고민이 되게 되었다. 밤 새고 집에 안 들어가는 것도 좋아하고, 해외 여행 갈때도 있고, 지방출장도 가야하고, 내 한 몸 데리고 살기도 정신이 없는데, 부담이 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일단 소리짱이 아프니까, 나을 때까지는 같이 있어야지.' 다 낫고 나면, 다시 생각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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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짱은 수술을 잘 마쳤다고는 하지만, 영양실조여서 수액을 맞으면서 입원치료도 받고 퇴원했다. 집에 와서도 기운이 전혀 없어서, '잘 회복할 수 있으려나', 걱정하게 했다. 게다가, 눈이 안보이는 상태에서, 사람과 같이 사는 고양이 수업도 받아야 했다. 화장실 모래에 쉬하는 법을 어떻게 가르쳐줘야 하나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모래를 촉각으로 감지하자 금방 참았던 쉬를 하고, 모래를 덥고 아주 익숙하게 잘하는 걸 보니 놀라웠다.
반면, 밥을 잘 안먹는 바람에 영양실조가 다시 생기려고 했다. 고양이가 영양실조에 걸리면, 등가죽을 손으로 움켜잡은 후에 놓고, 등가죽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모양을 관찰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빠르게 돌아간다면, 괜찮은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한다. 한번씩 녀석의 등가죽을 당겨보면서, 사료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어디 다른 곳이 아픈데가 있는 것인지 초조한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은 다시 병원에 데리고 갔다.
문제의 원인은 뜻밖에도 먹이가 제공되는 방식에 있었다. 소리짱은 젖을 떼기 전에 엄마와 헤어져서, 빨아서 먹던 젖 이외에, 그릇에서 핧아서 섭취하는 음식물이란 것을 경험해 본적이 없었다. 병원에서는 고양이 간호사분이 초유를 손가락에 찍어서 입에 톡톡 발라주면서 먹는 것이라는 가르쳐주었고 그제서야, 소리짱은 봇물터지듯이 그릇에 담긴 음식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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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세 가지가 충족되자, 마침내, 몸도 좋아지고, 수술상처도 좋아지고 있었다. 우리들도 거칠지만, 이것저것 배우고, 나아지고 있었다. 지인들에게 물어보고, 인터넷도 찾아본다. 다만, 소리짱은 눈이 안보이니까, 그 모든 비장애고양이들에게 맞춰진 가이드들이 지시하는 내용들을 한 단계 의미화시킨 후에 소리와 촉각으로 번역하는 과정을 거쳐야했다. 그 와중에 어떤 것이 잘된 번역이고, 어떤 것은 잘못된 번역인지도 시행착오를 통해서 배워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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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를 먹는 법을 배운 소리짱은 점점 회복에 속도를 붙여나갔다. 처음 만났을 때, 보여주었던 삶을 향한 투지가 다시금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이번엔 회복을 향한 투지. 소리짱은 아주 열심히 먹고, 아주 열심히 잠을 잔다. 일어나면, 다시 먹고, 그러고 나면, 또 하루 종일 잠만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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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짱과 우리 사이의 관계는 아직 시작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항상 소리짱을 괴롭히는 사람들이었다. 병원에 강제로 데려가고, 입원을 시키고, 수술을 시키고, 약을 먹이고, '사료'라는 이상한 음식을 먹으라고 하고, 화장실을 사용하라고 하고, 그러고 나면 피곤해져서, 다 같이 잠을 잤다. 일단은, 어서 건강해지기를.
하지만, 소리짱은 한없이 우울해보였다. 엄마한테 버림 받고, 형제들이랑 떨어져서, 고생도 많이해서 그런지, 하루 종일 잠만 자는 녀석의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우울은 절망에 가까운 것이었다. 살아 남기는 했는데, 무슨 낙으로 살아야 할지 막막해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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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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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돌봄이 필요한데, 집에 혼자 둘수가 없어서, 작업실로 함께 출퇴근을 했다. 처음에는 이동장에 넣어서, 자전거 뒤에 싣고, 이동했었는데, 엄청나게 울고, 이동장 안에 쉬도 하고, 뭔가 스트레스가 엄청난 것 같았다. 한번은 이동장에 안들어가려고 하면서 내 몸에 찰싹 들러붙길래, 그대로 내가 즐겨 입던 초록색 솜잠바 속에 소리짱을 넣고 자크를 올리고 자전거를 탔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12월이었다. 지금도 소리짱이 그 자켓은 기억하는 것 같다. 원래는 고양이를 데리고 외부에서 이동할 때는 고양이가 놀라면 찻길로 튀어 나가기 때문에, 반드시 이동장에 넣거나, 몸줄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몸줄 같은 게 없기도 했고 소리짱은 피부에 최대한 가깝게 붙어서, 심장소리나, 온기를 느끼지 않으면, 안심이 안되는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더 안전해보자고, 잠바의 자크를 꽉 올려서 채우려고 하면, 소리짱은 저항하면서 자켓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바깥 바람을 맞겠다고 했다. 우리는 소리짱이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야, 자전거 태워주니까, 오백원 내라.'
어쨌든, 우리들은 소리짱처럼 눈이 없는 고양이인데도 어깨냥이에다가, 산속에서 산책하는 고양이의 냥스타그램 등을 발견하고, 소리짱도 산책냥이가 될 소질이 있다고 꿈을 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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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이 없어도 거침이 없었다. 테이블의 높이 같은 것이 익숙해지자 뛰어오르기도 하고, 뛰어내리기도 했다. 그치만, 테이블위가 항상 잘 치워져있지 않다보니, 소리짱은 생각도 못한 장애물이 갑자기 출현하는 상황을 몇번마주하게 된다. 눈이 없는 소리짱은 특히나 어릴때는 젊은 혈기(?)로 많이 부딪히고 다녔다. 어지간히 조금 부딪히거나 채이는 것은 그냥 신경쓰지 않을 만큼, 세상은 흥미로운 것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테이블이 정리되어 있지 않았던 것은 많이 실망했는지, 곧 뛰어 오르는 일은 그만두게 되었다. 소리짱, 그래도 우린 기억하고 있어. 너가 책상에도 무릎에도 뛰어올라 오곤 했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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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안보여도, 소리짱은 사냥을 할 수 있었다. 요점은 고양이 스텝이다. 사뿐사뿐. 그리고, 존재를 숨긴다. 잠자리, 파리 이런것들이 나타나면, 곧잘 잡아오거나, 침을 발라서, 꼼짝못하게 만든 파리를 갖고 놀다가 버리고 간다거나. 하여튼, 거침이 없었다. 소리짱은 뒷일은 잘 생각하지 않는 편이라서, 옥탑방에 살 때, 바깥에 놓인 높은 사다리를 올라가서는 못 내려와서 울고 불고 난리 부리기도 했다. 지금도 옥탑에서 뛰어 놀았던 기억은 소중히 간직하고 있겠지. 다음엔 마당있는 집에 가서 산책냥이 도전해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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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짱은 귀신처럼 우리의 위치와 몸짓을 파악한다. 눈이 안보이지만, 눈이 있는 것 처럼 고개를 움직인다. 내가 다가가면, 내 얼굴을 본다. 어떻게 아는 걸까? 예를들면, 좀 거리가 떨어진 탁자에서 앉아서 작업을 하고 있다가도, 고개를 돌려서, 소리짱을 바라보면, 소리짱도 그것을 알아채고 나를 마주 본다. '에? 나 지금 소리 안냈는데? 어떻게 알지?' 귀신 같은 소리짱.
귀가 엄청나게 좋다고 하는 고양이는, 원래부터 시각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의사선생님이 말했었다. 시각은 보조적이고, 주 감각은 청각과 후각이라고 들었다. 후각은 물론 좋을테지만, 소리짱의 반응은 그야말로,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소리짱의 반응과 나의 행동을 집요하게 관찰해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름의 가설을 세웠다. '관절' 소리와 '숨'소리를 듣는 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내가 소리짱에게 손을 내밀었다고 하자. 고양이 인사를 하려고, 조금 떨어진 거리에 쭈그려 앉았은 상태에서 손을 내미는 동작을 했다고 하면, 소리짱은 손 끝을 바라본다. 그 때 내가 검지 손가락을 살며시, 구부린다면, 검지손가락을 주목한다. 어떻게 가능할까? 검지손가락을 구부리는 소리가 나는 것 아닐까? 관절 연골의 마찰음 같은 것이. 마찬가지로 숨소리가 나의 코에서 숨소리가 나는데, 이것은 마치 스피커와 같아서, 얼굴면에서 반사되어서 내가 바라보는 쪽으로 지향성을 갖는 소리가 아닐까. 그렇다면, 이 스피커를-즉, 얼굴을 소리짱에게 향하게 되면, 소리의 에너지가 높아져서, 주목받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소리가 아무리 작아도, 그것이 직접적으로 전해져 오는지, 반사되어서 돌아오는지는 큰 차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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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짱의 앞에서 화려하게 움직이다가, 어느 순간 몸의 모든 기관을 멈춰보았다. 이때, 반드시 숨도 참아야 한다. 가능하면, 심장도 조용히 뛰게 해야 한다. 관절하나도 움직이지 말것. 그러면, 소리짱이 흥미를 보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라진 존재. 분명히 있었는데, 없는 것 같네? 어디갔지? 하고 가까이 온다. 이때, 내 손의 마지막 위치에 대한 기억이 헷갈리고, 손의 위치를 예측하지 못해, 살짝 닿거나 한다. '아니, 냄새로 알아야 하는 거 아냐?' 라고 생각하지만, '으, 더이상 숨 참을 수가 없다.' 우리는, 이런식으로 소리 투명인간 놀이를 하고 노는 것을 한동안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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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짱에게 존재는 어떻게 생겼으면, 어떻게 들려올까. 나의 손과 나의 목관절과 나의 발자국 소리가 한 사람의 것이라는 걸, 한 존재에서 유래하고 있는 것이라는 걸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까마귀 날자 배떨어진다.' 가 아니라, 까마귀와 배가 세포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덩어리라는 걸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시각은 소리없는 연결을 파악할 수 있다. 청각으로는 연결된 몸을 파악할 수 없는 게 아닐까? 그러면, 소리짱에게 내가 걸어오는 모양은 시끄러운 양철 로봇트 처럼 팔다리목가슴발이 치렁치렁 거리는 소리나는 여러 군집이 무섭게 다가오는 것과 같이 보이는 건 아닐까? 어째서인지 저 소리들은 함께 움직이긴 하는데, 왜 손을 물면, 위에있는 항상 떠드는 입이 어딘가 아픈 듯이 소리를 낼까. 오늘 나에게 맛있는 참치캔을 준 손이 고맙긴한데, 버릇없이, '맛있냐? 고맙지?'라고 말하는 저 입은 항상 떠들기만 하는 데, 나한테 뭐가 고마워할 일을 했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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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짱의 청각 테스트는 언제나 재미있다. 모든 고양이들 놀이의 기본은 움직이다가 멈추는 것이고, 사물이 보이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인간 어린이 두 살도 같은 식으로 놀아주면 된다. 숨겼다가, 보여주기. 소리짱의 경우에는 소리로 숨겨야 한다. 소리를 내다가 안내면 된다. 소리짱이 좋아하는 장난감은 그래서, 소리가 작은 장난감이다. 방울 이런거 달린것도 좋아하지만, 어느정도 하고 나면, 그런 것들은 금방 싫증이 난다. 소리가 너무 잘 들려서, 재미가 없는 것 같다. 그냥 막대기 끝네 작은 털뭉치가 달린 장난감이 있는데, 원래는 물고 빠는 장난감이지만, 이걸로 장판 바닥을 긁어주면, 사-악 사-악 하는 작은 소리가 난다. 여기까지는 사람귀에 들리지만, 그런 다음에 그냥 제자리에서 천천히 회전을 시킨다. 그러면, 우리는 듣지 못하는 더 작은 사-악 소리가 나겠지. 소리짱은 이 소리를 아주 흥미롭게 듣는다. 분명히 소리가 작다는 것은 소리짱에게는 존재자체가 작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주 작은 벌레. 파리가 앉아서 손바닥을 비비는 소리 같은 것은 자신보다 약자라는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지도 모른다. 만만하게 보인다. 그러면, 사냥하기 위해, 아주 사뿐사뿐 걸어온다. 암살자. 잠자리도 파리도 소리짱이 다가오는 걸 잘 파악하지 못한다. 눈이 없었다면, 나도 분명히 파악할 수 없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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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짱이랑 놀아줄때, 함께 눈을 감고 놀면 좋은 것이 있다. 소리짱에게, 시각은 일종의 '반칙' 같은 것이다. 소리짱은 자신의 위치를 숨기고 싶어한다. 조용히-, 조용히. 그렇지만, 나에게는 너무 쉽게 잘 보인다. 그럴때, 덥썩하고 소리짱을 잡는다거나, 하면, 자존심 비슷한 것이 상하는 것 같다. 짜증낸다. 시각을 가지고 자기를 만지는 손은 굉장히 무례한 손일 수가 있을 것 같다. 눈이 잘 보이는 고양이에게 다가갈때도, 손을 고양이 얼굴 모양으로 해서, 얼굴비비기를 손으로 하면서, 몸을 만지라고 하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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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짱은 놀이를 잘하고 싶어서, 많은 노력을 한다. 내가 장난감을 이리저리 옮기다가, 멈추면, 마지막으로 소리가 난 위치를 주목해서 보고 있다. 공격하려고 자세를 잡기는 하는데, 자신감이 없어진다, 저기 쯤에 있는데, 소리짱은 내가 가는 순간 도망갈 거 같은데, 한번에 뛰어서 정확하게 저 지점을 사냥해야 하는 숙제속에서 갈등한다. 결국 조금이라도 자신이 없어지면, 다음 기회를 노린다. 아주 신중한 사냥꾼이다. 소리짱은 가까운 거리에서는 굉장히 정확하게 추적해오기 때문에, 장난감을 멈추고 있을 수가 없다. 나는 시각이 있기 때문에, 소리짱의 공격이 느리게 느껴진다. 소리짱은 시각이 없다라는 핸디캡을 가지고, 나와 경쟁하기 때문에, 어느 순간 재미가 없어지기도 한다. 그럴때는, 나도 눈을 감고 게임에 참여하는 것도 좋다. 눈을 감으면, 우리는 동등해진다. 나는 장난감을 흔들다가 바닥에 내려놓는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포식자 앞에 놓인 어떤 작은 벌레의 심정을 떠올린다. 하늘에서 독수리처럼 나꿔채가는 그 포식자가 다가오는 소리를 나는 아직 듣지 못했는데, 내 몸은 그의 발톱에 어느새 찢겨져 있는 것이다. 으아. 눈을 감고 있으면, 소리짱이 다가오는 걸 전혀 파악할 수가 없다. 나는 소리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는 감각을 갖지 못한, 소리적으로 열등한 존재이다.
몇몇 삼촌, 이모들이 주고 간 사랑의 장난감들이 있었다. 고양이 장난감은 반짝이는 셀로판지나 화려한 깃털 이런것들이 달린 막대기들이 있는데, 소리짱은 눈이 안보이기 때문에, 그런 장난감들은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특별하게 방울이나 사기 조각 같은 소리나는 것들이 달린 장난감을 골랐다고 한다. 일단 소리가 나는 장난감을 소리짱도 더 관심을 보이는 것 같기는 했다.
모든 고양이들 놀이의 기본은 움직이다가 멈추는 것이고, 사물이 보이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인간 어린이 두 살도 같은 식으로 놀아주면 된다. 숨겼다가, 보여주기. 소리짱의 경우에는 소리로 숨겨야 한다. 소리를 내다가 안내면 된다. 소리짱이 좋아하는 장난감은 그래서, 소리가 작은 장난감이다. 방울 이런거 달린것도 좋아하지만, 어느정도 하고 나면, 그런 것들은 금방 싫증이 난다. 소리가 너무 잘 들려서, 재미가 없는 것 같다. 그냥 막대기 끝네 작은 털뭉치가 달린 장난감이 있는데, 원래는 물고 빠는 장난감이지만, 이걸로 장판 바닥을 긁어주면, 사-악 사-악 하는 작은 소리가 난다. 여기까지는 사람귀에 들리지만, 그런 다음에 그냥 제자리에서 천천히 회전을 시킨다. 그러면, 우리는 듣지 못하는 더 작은 사-악 소리가 나겠지. 소리짱은 이 소리를 아주 흥미롭게 듣는다. 분명히 소리가 작다는 것은 소리짱에게는 존재자체가 작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주 작은 벌레. 파리가 앉아서 손바닥을 비비는 소리 같은 것은 자신보다 약자라는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지도 모른다. 만만하게 보인다. 그러면, 사냥하기 위해, 아주 사뿐사뿐 걸어온다. 암살자. 잠자리도 파리도 소리짱이 다가오는 걸 잘 파악하지 못한다. 눈이 없었다면, 나도 분명히 파악할 수 없었겠지.
놀이 시간을 조금씩 가지면서, 발견한 점은 소리짱에게는 소리의 크기가 곧 존재의 크기라는 점이었다.
손으로 놀아주기. 소리로 놀아주기. 소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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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부딪히는 것을 조금 신경쓰기 시작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여기에는 몇번의 사건들이 계기가 되었을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탈리아에 여행 가서 사왔던 예쁜 찻잔이 테이블위에 있었는데, 소리짱이 테이블 위로 돌아다니다가, 밀어서 떨어뜨려서 깨뜨린 적이 있었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소리짱 정말 밉다고 나무랐다. 고래고래고래고래. 그런다음에는, 삼각형 네모가 그려진 또 다른 찻잔을 비슷한 방식으로 깨서 잃어버리게 되었는데, 애초에 테이블에서 떨어지기 쉽게 놓여져있던 것도 잘못이었지만, 나는 잘 탓하는 사람이었다. 너 때문이야. 너가 책임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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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보니 그랬을까, 소리짱이 좀 위축된 걸까. 지금도 생각하면 속상하지만, 뭐 이미 벌어진 일을 어쩌겠나. 누구라도 탓하고 싶은 심정인 내 자신의 우울이 소리짱에게 씌워진 상황과 같은 것이다. 누구라도 탓하지 않으면, 누구라도 희생시키지 않으면 안될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내 안에 배긴, 어떤 자국, 어떤 상흔이 지금도 아주 다 낫지 못했다는 것을 계속해서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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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거리++ 소리짱 새 좋아한다. 소리짱 떨어진 적 있다. 그래서, 새 소리나는 장치 만들었었다. 떨어지지 말라고. 그런데, 실제 새가 아니라는 거 금방 안다. 어떻게 알까. 어떻게 다른걸까? 하여튼, 명확하게 안다.
소리짱이랑 이야기를 하는 것도 재미있다. 냐오옹. 우리의 언어만들기. 소리짱은 사람 흉내를 내고, 사람은 고양이 흉내를 낸다. 하지만, 결국은 우리는 무언가를 말하고, 듣는다. 흉내가 아니라.
오늘의 검은화면은 무언가, 뿌옇고, 흐리다. 모든 것들이 차분하게 내려앉아 있는가? 소리들이 눈을 잘 감고 있는가. 분자들이 잘, 숨쉬고 있는가. 열쇠가, 전구가, 쨈이.
가지가, 물속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파란색.
귀를 막고, 또 그 위에, 헤드폰을 낀다. 음악을 크게 튼다. 귀를 막고, 귀는 맑고.
엇그제였나, 어떤 작가를 두고, 원정이 '빅네임'이라고 언급했는데, 그것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 이전부터였는지, 무언가 그 사람의 작업과 태도를, 그 미술계 미술-미술 거리는 '짓'을 보고 있자니, 혐오가 치고 올라와서, 나도 모르게, 분개를 혹은 그 혐오를 사방팔방에 내뿜고 있었나보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주의를 받았다.
오늘도 말이다. 누군가가, 연구모임같은 것을 같이 하자고 제안을 해주었는데, 예상되는 멤버들을 보면, 꽤 내놓으라 하는 사람들, - 그러니까, 뭘 '내놓으라' 는 걸까. - 아무튼, 내놓으라 하는 그런 사람들이 함께 하자고 하는 사람들 속에 들어가 다이아몬드 처럼 박혀서 빛이 나고 있더라. 모지? 부러운걸까, 나는. 아님 모지, 왜케 싫지 이게.
누군가의 작업 프로필 페이지를 보다가는, 또한, 울고 싶어지기도 하다가, 문득, 아- 이 사람의 작업은 나에게 괜찮은걸까. 혐오스럽지는 않은데, 다만, 눈물이 날것 같은 이유는 뭘까, 그건 그저 무슨 '작업이 좋아서요, 감동'. 같은 것이 아니라, 나를 대입할 수 있기 때문에, 같은 처지여서. 그런가, 싶다. 나도 이런데, 우리는 이렇게 해서, 잘 지낼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이런 '빅네임'들과 같이 작업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다는 것은 사실, 좋은 걸까. 나는 이들과 이들이 속하려고 노력하는 세계의 그 혐오스러움을 어떻게 메타화 시키기라도 해야 하는 걸까? 아, 그래. 이런이런 조건들 속에서, 그것에 맞춰가며 이렇게 저렇게 잘, 그 기득권자와 권력자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들을 그렇게 잘, 풀었구나. 하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다만, 나는 별로 관심없는 그런 '저들만의 리그'에 해당하는 그렇고 그런 예술, 시나라까먹는 소리들.
근데, 일단 그래서, 한국 에르메스 미술상, 심사위원은 외국사람이더라, 어이가 없었다.
근데, 그래서, 상금이라는게 고작 2천만원이더라, 이건 뭐 내가 다니던 회사의 1년간 봉급에서, 보너스 정도 될까 말까한 금액이고, 지금 내가, 일용직으로 프로젝트 계약해서 1건당 받는 개발 용역 비용보다 약간 더 되는 금액에 해당하는데, 그게 고작. 그 대단한 '한국 에르메스 미술상'의 상금의 액수가 고작, 그것밖에 안된다니.
이 세계가 얼마나 피폐하고, 가난하고, 열악한지 말하지 않아도 전해져 올 정도이다.
그런 상황이니, ... 결국, 그렇게 시나라까먹는 소리들을 잘 끼워 맞춰서, 하는 것을 나는 응원해 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미안하다. 나는 한국 역사/ 민족/ 문화. 그런 이야기 거대서사. 정말 혐오한단다. 그건 나와는 관계가 없어. 그냥 관계만 없으면 다행이게? 관계가 없는데, 관계를 지우는 걸 뭐라고 하니? '압제'와 '주입'이라고 한단다. 그러니, 숨이 막히고, 쳐다도 보고 싶지 않은 그런 게 바로 그런것이란다.
그런데도, 이걸 내가 받아주고, 그런 사람들이랑도 희희낙락 웃으면서 같이 작업해야 하고, 또 나도 그들처럼 되려고 잘 살펴보아야하고, '성공'해서 고작 이천만원이든, 손에 잠깐 쥐는 척이라도 하기 위해서, 기자양반들한테도 잘 받아적으라고, 작가님 말씀 잘 읊어야 하고.... 그런거냐 지금. 아, 그런거냐 정말.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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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잘못된 것이 많이 있다.
그건, 내가 그것들이 '잘못되었어' 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렇다는 건, 사실 내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세상을 역으로 잘못된 것으로 인식 및 규정하고, 비난하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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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 위에서 녹아내리는 얼음처럼, 이라고 말했다.
어느, 산후조리를 위한 케겔운동 가이드 동영상에서 나온 표현이었다.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아스팔트 위에서 녹아내리는 얼음이라니, 내 허리가, 내 골반이 지금 이 매트리스 위에서, 이 매트위에 이렇게 놓여있는 내 허리춤이, 뜨거운 아스팔트위에서 물기를 줄줄 흘리면서, 녹아내리고 있는 얼음처럼. 그렇게 놓여있다니. 녹아, 흘러, 내려.
케겔 운동은, 항문을 조이고 푸는 것을 반복하는 운동이라는데, 출산 후 산후조리에도 좋고, 남성은 전립선 강화에도 좋단다, 여튼 성감도 좋아진다고 하고..
조이는 과정에서 실로 꽤메져서 위로 당겨지는 느낌을 찾아보라고 했는데, 그것도 뭐랄까. 알것 같기도 한 느낌이다. 내가 들이마시는 호흡으로 내 코끝에서 내 항문과 요도가 꿰메어진 흰 명주실이 팽팽하게 당겨 올려지는 것에 대한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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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짱 [1] 이랑 함께 지내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일단, 내가 동물이라는 것이다. 인간이기 이전에, 혹은 인간이면서, 혹은 인간이라는 사실이 말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내가 소리짱, 너와 같은 동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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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를 유투브 보고, 좀 따라해보고 있는데, 다운-독, 이란 자세가 있어. 처음엔, 솔직히 조금 부끄러웠달까, 아래로 향하는 개의 자세라는 것을 한다는 것이.
그렇지만, 소리짱을 보면, 너무 잘해, '다운-캣' 스트레칭. 종종 보여주는데, 나도 동물로서 질 수 없지, 하고 생각해서 조금 더 노력해본다.
사실, 내가 개랑 같다는 점에 있어서, 부끄럽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럼 뭐였을까? 인간은 개보다 나은 존재라고, 우월하거나, 상위의 존재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사람에게 개라는 것은 많은 경우, 좋은 소리가 아니다. 개-새끼라고 한다거나, 개-같은-자식. 근데, 개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자, 다운-독. 발꿈치 바닥에, 꾹. 눌러줍니다.'
나는, 이제는 다운-독 자세가 부끄럽지는 않다. 다만, 부러울 뿐이다. 독(dog)들이.. 그리고 소리짱이 무한 스트레칭, 냥-스트레칭 시전할 때 마다. '와.....'
생명체로서, 존경스럽다. 나도 노력하면, 너처럼 될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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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에서 녹아내리는 얼음이 된 '나'를 상상하는 것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그것이 어찌나, 평화로운 장면인지 모른다.
아무런 고민도, 의식도 없다, 얼음이 된 나는 나를 의식하지도 않는다, 사고하지도 않는다, 다만, 관망하고 있을 뿐이다. 얼음은 녹아내리고, 그것으로 끝이 난다. 더이상 어떤 고민도, 어색함도, 불안도 가질 수 있는 '의식'이란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존재. 사물. 무생물.
그럼에도, 나는 아스팔트가 따뜻하다는 것을 감각하면서, 녹아내린다. 감각할 '정신'이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데, 왜 온기만은 감각한다고 상정하고 있을까. 신기하네.
[1] : 원래 공식적으로는 '소리'가 이름인데, 약간 일본식이랄까? ~짱을 붙여서 부른다. 게다가, 원래 ~짱이라는 건 여성에게 붙이는 접미사라는데, '소리'는 생물학적으로는 남성 고양이이지만, 어쨌든 입에 붙어버려서, '소리짱'이다. 소리짱에게 변명하자만, 나도 남성이지만, 두호짱으로 부르고, 불리니까, 아 그런거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도? 하고 생각해주면 좋겠네
흉식 호흡과 복식 호흡이 있다. 사실, 형은 교회에서 찬양단원이었는데, 합창과 중창. 이런것들에 대해서 무언가 매료라도 된것인지. 꽤나 열심히 했었다. 대학에 가서도 합창단에 들어가서 활동했었다. 어쨌든 그래서, 대학 생활을 하던 시절에 항상 노력하던 것이, 복식 호흡이란 것인데, 나는 그것을 좀 따라해보려고 노력했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나? 했었는데,
그래서, 흉식 호흡은 나쁘고, 복식 호흡은 좋다. 라는 이분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면, 내가 따라 하는 유투브 요가에서는 사실, 두가지를 다 사용하고 훈련하고 있었지. 흉식 호흡은 또 그 나름대로 다른 묘미가 있다. 산소포화도를 강하게 올리는 느낌이 주는 운동감도 있다. 숨은 숨이다. 좋은 숨과 나쁜 숨은 정해진 것이 아니었다.
몸에 대해서 많이 신경쓰고 지낸다. 그럴수록 더, 어떤 수행에 있어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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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짱에 대한 이야기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란, 사실 어떤 폭력에 대한 것이다. 폭력. 나는 소리짱을 죽으라고, 발로 걷어찬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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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의 관계는 어떻게 시작됐는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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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의 생각이나 관점이란 것들이 계속해서 바뀌기 때문에, 어느 한가지로 말할 수가 없다.
나는 계속해서 방황하는 사물이거나,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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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님이 '아, 이런 이야기들을 이대로 실는 것이 좋을까요?' 하고 물었다. 나는, '글쎄요, 아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읽지는 않지 않을까요?' 라고 늑장을 부렸다.
나는, 늑장을 부리는 것이 일생의 사업이다. 언제나 늑장을 부리고 앉아있다. 나무늘보라는 동물이 있는데, 실제로 본적은 없다만, 어린이 과학만화책에 그려진 나무늘보의 모습과 형태는 아주 흥미로운 것이었다.
어지간히도 그 동물이 마음에 들었는가 보다 싶기도 하다. 너는 마치, 하나의 비닐봉다리처럼 나뭇가지에 긴 두팔로 메달려있었다. 그 늘어진 팔이란, 정말 아스팔트위에서 녹아내리는 얼음처럼, 두말할 것도 없이, 중력에 오로지 지배당하는 축 늘어진 팔이었다, 그것은 더이상 생명체의 그것도 아닌 것 처럼, 마치 수박이 든 비닐봉지의 손잡이 부분을 나뭇가지에 걸어 놓은 것 처럼, 정확하고 물리적으로 효율적인 타원을 그리며, 너의 익살스러운 얼굴과 몸덩어리를 그 주머니 안에 그저 담고만 있는 것이었다. 저러고 열두시간이고 메달려있을수 있다던가, 제대로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간에 세상 모릅니다 하고, 그저 메달려 있기만 할 수가 있다는 것이 너의 일상이라는 것을 들었을 때, 아. 하고 눈이 멈춰버렸다지.
고양이는 원래 그렇게 '냐옹, 냐옹' 하는 동물이 아니라고 한다는 말도 어디선가 들었다. '냐옹, 냐옹' 하는 것은 그러니까, 사람들한테, 집사들한테 말을 거는 것이거나, 무언가를 지시하는 것이지, 그들의 언어생활속에 '냐옹, 냐옹'이란 것이 그다지 유의미하지는 않다는 이야기였다. 여튼, 소리짱도 말 수 없는 고양이었는데, 어느날부터인가 갑자기, 우리들의 말을 따라하기 시작을 했다. 마치, 말을 거는 것과 같이. 그러고 나서, 나의 분노조절장애도 시작되었다.
소리짱이 아주 애기 였을때, 그러니까, 영양실조로 비틀거리면서, 마지막 안간힘을 다해서, 빽- 빽- 울어대면서, 우리들의 발걸음을 따라서, 작은 발로, 거인처럼 땅을 진동하면서, 우리의 작업실로 따라, 걸어들어왔을때는, 그리고, 10월 말의 추운 날, 따뜻한 화목난로 곁에서, 낯설은 두명의 구조자들과 함께 저녁시간을 보내던 그 날에는, 곧 쓰러질 것 처럼, 비틀 거리고 있었지만, 휏대위에서 조는 참새 처럼, 쓰러질듯 쓰러질듯 하지만, 겨우 메달려있는 작은 참새 새끼처럼 그렇게 하고 있었는데.
그날 집에 데려와서, 우유? 라도 줘보았는데, 먹지 않고. 그런데, 먹고 싶은데, 먹지를 못했었다.
이러다 죽게 되지 않을까. 하다가, 병원에 가서 두 눈을 제거하고 다시 집에 돌아왔을때는, 아직은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찌나 하늘이 꺼질 것 처럼 우울하던지. 너의 존재가.
그 때, 문을 꼭 닫고만 있는 너에게 내가 말을 걸기 시작한 것이, 손으로 소리를 내면서, 하는 소리극장 같은 것이었지. 아마, 이거 병원도 가기 전에 시작했었나? 싶기도 하고. 정확히 모르겠지만.
조금씩 몸의 기운을 차리고, 많이 자고, 그런다음에는, 손 소리 놀이에 푹 빠져들었지. 그때는, 귀여웠지, 물어도 귀엽게 물고, 그랬는데.
나중에 알았더랬지, 손으로 놀아주면 안된다고.
일단 손이 장난감이 된 소리짱은, 이후로도 내 손은 물어도 되는 물건으로 여긴다.
피가 나도록 깨물어서, 나의 분노를 있는대로 사는 소리짱이었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고, 인터넷에서 찾아본, 손 무는 고양이 버릇 고치는 방법들이란 것들도, 다 눈이 보이는 고양이를 위한 것들이었는지 잘 되지를 않았다. 일단 눈을 마주보고, 권위있게 내려다 보는 시선... 이런것은 상대방이 눈이 없으니까, 잘 될리가 없지 않나.
게다가, 나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소리짱에게 있어서, 나의 손과 나의 입과 나의 몸이 하나의 연결된 객체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눈은 연결을 파악할 수 있지만, 소리와 막연한 동시성, 냄새가 유사한 것. 이런것들이 이 모든 '소리현상' '감각현상'들의 하나의 개체로 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인식시킬 수 있는 걸까.
우리는 또, 그다니, 좋은 집사들이 되지를 못한다. 지금도 그렇다.
그러니까, 마찰이 안그래도 어린 소리짱에게 없을리가 없다. 다음 문제는 쉬를 하는 문제인데, 처음에는, 시멘트 같은 회색 색깔의 모레 화장실을 사용했었는데, 금방 적응을 잘했었다. 그런다음에는 두부모래로 바꿨는데, 아 이게, 바꾸는게 정말 싫은 건지.. 맘에 안드는 건지, 냄새가 나는 건지, 이불에도 쉬하고, 방에도 쉬하고, 방광염도 자주 걸려서, 그것때문에 쉬하고, 옷에도 하고, 내 다리에도 쉬하고.
눈이 안보이니까, 탁자위에 두었던 아끼는 찻잔들도 몇개 소리짱 너가 깨먹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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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그러그러 저러저러 했었다......
암튼, 그래서 소리짱이 물어서 내가 했던 행동이 같이 무는 것이었다. 아니, 동물로서 예의를 모른다길래, 가르쳐줘야겠다. 나도 물어야지하고.. 물었는데
귀 끝을 물어서 귀 끝이 살이 약간 2미리 정도 떨어졌는데, '맛 좀 봐라. 통쾌하다!' 했었는데, 이게 아, 금방 자랄줄 알았는데, 몇개월이 지나도, 귀에서 떨어진 살점이 회복이 안되는 거야. 아니, 이게 계속 그 부분이 그 상태로 이쁜 귀가, 타원으로 이쁘게 생겼는데, 거기만 쪼금 살점이 떨어져있어 가지고, 아, 내가 진짜, 안타깝고 미안했었는데, 소리짱은 모 사실 상관도 하지 않고, 그냥 물고, 쉬하고, 사고치는 것은 여튼 그것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다행이 한 일년 좀더 지나면서는 없어지더라, 너무 다행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