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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7 +45,31 @@ 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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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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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키워본적은 없었지만, 예전 작업실에서 같이 작업실을 쓰던 분이 기르던 고양이가 두 마리 있었다. 그 고양이들도 손바닥만큼 작을 때 부터 길러졌는데, 몇번 주인분의 부탁으로 돌봐준적이 있기는 했었다. 이제는 베테랑 캣맘이 되신 그 분께 긴급연락을 취해서,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구했다. 만화에서 본 대로, 우유를 따듯하게 데워서, 먹으라고 줬는데, 냄새만 맞고 먹지는 않는다. 다만, 화목난로 옆에서 쉬고 있는 소리짱은 이따금씩 힘주어 웅크린 몸을 버티지 못하고, 균형을 잃는 몸짓을 보였다. 지금 비틀거린건지, 아니면 꾸벅하고 졸고 있는 건지 말이 안통하니 물어볼 수도 없고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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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얼굴 한 쪽이 상처 딱지 같은 것으로 덮여있기도 했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동물병원을 수소문했다. 베테랑 캣맘 지인의 추천으로 소개 받은 동물병원에서는 길냥이를 인보하는 조건으로 치료비와 수술비를 크게 할인해주셨다. 수술. 그러니까, 안구적출 수술을 말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소리짱은 시력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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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진찰소견을 듣고, 우리는 '소리'라는 이름을 마음속으로 정하고 있었다. 소리짱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줄 이름,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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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짱의 병원비는 소리짱이 받은 치료의 내용에 비하면, 정말 저렴한 금액이었지만, 아무 계획도 없이 이 상황을 맞닥드린 우리에게는 상당히 부담이 되는 지출이었다. 고민끝에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모금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지출한 비용의 일부분만이라도 후원 받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소식을 접한 많은 분들이 다들 큰 돈을 보내주셔서, 아차하는 사이에 전액이 모금되어버렸다. 정말 아차, 하면 원래 지출한 액수보다도 더 많이 모일 위험에 처할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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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소리짱, 축복받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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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길고양이를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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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이쁘다, 우리 집에 갈래?' 하고 추파를 던지면서, 다녔던 나였지만, 이렇게 소리짱을 갑자기 책임지게 되니, 고민이 되게 되었다. 밤새고 집에 안들어가는 날도 많고, 해외 여행 갈때도 있고, 지방출장도 가고, 내 한 몸 데리고 살기도 정신이 없는데, 부담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일단 소리짱이 아프니까, 나을 때까지는 같이 있어야지.' 다 낫고 나면, 다시 생각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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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짱은 영양실조여서 수액도 맞고, 수술을 잘 마쳤다고는 하지만, 집에 와서도 기운이 전혀 없어서, 살아날 수 있는 걸까? 걱정하게 했다. 눈이 안보이는 상태로, 사람과 같이 사는 고양이 수업을 받아야 했다. 화장실 모래에 쉬하는 법을 어떻게 가르쳐줘야 하나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모래를 촉각으로 감지하자 금방 참았던 쉬를 하고, 모레를 덥고 아주 잘하는 걸 보고 놀라웠다. 소리짱은 너무 어릴때 엄마와 헤어져서, 젖을 떼지 못했기 때문에, 음식물을 핧아서 먹어본적이 없어서, 한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영양실조가 심해지는 헤프닝도 겪었다. 병원에서 초유를 손가락에 찍어서 입에 발라주면서 먹는 법을 가르쳐주자, 봇물터지듯이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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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삼세가지가 충족되자, 몸도 좋아지고, 수술상처도 좋아지고 있었다. 우리들도 거칠지만, 이것저것 배우고, 나아지고는 있었다. 지인들에게 물어보고, 인터넷도 찾아본다. 다만, 소리짱은 눈이 안보이니까, 그 모든 비장애고양이들에게 맞춰진 가이드들이 지시하는 내용을 한 단계 개념적으로 추상화시킨 후에 소리와 촉각으로 번역하는 과정을 거쳐야했다. 그 와중에 어떤 것이 잘된 번역이고, 어떤 것은 잘못된 번역인지도 시행착오를 통해서 배워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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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검은화면은 무언가, 뿌옇고, 흐리다. 모든 것들이 차분하게 내려앉아 있는가? 소리들이 눈을 잘 감고 있는가. 분자들이 잘, 숨쉬고 있는가. 열쇠가, 전구가, 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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